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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책을 쓰고 출판하면서 느낀 것들

사실 출판에 대해서는 친구가 다 알아서 해서 난 크게 할 말이 없어야 정상인 것 같다. 뭐 그래도 옆에서 구경은 좀 한 지라 몇 가지 느낀 점이 좀 있다. 우리는 출판사에서 받아주지 않아 부크크와 유페이퍼를 이용했다. 결국 부크크와 유페이퍼는 우리처럼 출판사에 간택되지 못한 사람들의 리그인 것이다. 야구로 치자면 유명 작가들은 메이저리그가 되겠고, 그것보다 좀 못하면 AAA, 사람들이 거의 안보다시피 하는 루키리그의 세계도 있겠지. 그런데 이 루키리그의 작가들도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분들이다. 그러니 우리처럼 유페이퍼와 부크크에서 노는 분들은 사실 루키리그보다도 못한 처지지. 아무도 돈을 내고 보는 일이 없는 사회인 야구리그 정도? 이 사실은 부크크와 유페이퍼에서 파는 책들에 대해서 어느 수준을 기대해야 할지를 알려준다. 이런 이유로 부크크와 유페이퍼에만 올려놓으면 전혀 안팔린다. 교보문고나 Yes24 이런 데에 다른 멀쩡한 책들처럼 밀어넣어야 혹시 팔리더라도 거기서 팔리는 게지.

또 재밌는 게, 부크크는 그냥 딱 생각할 수 있는 아마추어들의 잔치인데, 유페이퍼는 묘한 특징이 있다. 유통되는 책이 전자책이라는 데서 기인하는 것인데, 수요는 제법 있는데 차마 실물 책을 서재에 진열하거나 지하철에서 들고 볼 수 없는 책들이 있다. '야설' 말이다. 야설이 여기서 제법 많이 팔리는 것 같더라. 거의 주수입원이 이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뭐 나도 이해한다. 학부시절 동아리방에서 마광수 교수의 '광마일기'라는 책을 보고 있었는데, 여자 후배들의 눈빛이란 게 참... 사실 걔네들이 날 불렀는데 책에 너무 집중을 했는지 대답을 못해줬고, 정신 차렸을 때는 다들 날 그런 눈으로 보고 있더라. 전자책이었으면 그런 일 없을 것 아닌가. 뭐 돈을 벌려면 너무 건전한 것 말고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욕망을 자극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또 하나 신기한 게 Apple Books다. 내 친구는 별 생각이 없었으나 나의 강력한 요청으로 여기도 책을 밀어넣었다. 그런데 Apple Books가 한국에서 전자책 서점으로 인정을 못받았단다. 한국 사람의 Apple ID로 들어가보면 한국어 책이 안보인다네. 한글로 쓰여진 책이 한국에서 팔릴 수가 없는데 누가 여기다 책을 올려서 팔려고 하겠나? 그래서 여기 가보면 한국어 책도 별로 없고, 유명한 책은 드물다. 나머지 책들을 보면 나보다 별 나을 게 없는 사람들이 올린거고, 무료 책들은 상태가 가관이다. 뭐 정상적인 서점 역할을 못하고 있다. 그래도 미국에 살고, 아이폰을 쓴다면 Apple Books보다 편하게 보는 방법이 없으니 뭐 이 레몬 마켓에 집어넣었다.

내게 블로그는 개인적인 공간이다. 읽을 사람을 의식해서 쓴 글이 많지 않다. 그냥 내 생각을 대충 그대로 쏟아놓는 방식으로 글을 써왔다. 그런데 책은 읽히기 위한 글이 아닌가. 글 쓰는 방식을 달리해야 했는데, 내가 해오던 것과 다르니 조금 어색했다. 그래 그냥 어색했다. 전반적으로 내용도 좀 미적지근해지고, 문체도 심심해지더라. 욕을 한바가지 쏟아놓고 싶은데 그냥 어중간하게 건너뛰고 마무리한 글도 있다. 좀 마음에 안 든다 싶어서 글을 고쳐쓰게 됐는데, 고쳐쓰면 쓸수록 더 어색해지더라고. 그래서 손을 더 못대고 그냥 놔두거나 빼버리게 됐다.

가장 결정적인 건 사람을 가려서 할 얘기는 책에 전혀 실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내가 유학을 준비할 때 이미 미국에서 석사 학위 받고 일까지 하다가 사업 하느라 한국에 들어온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내 유학 준비에 아주 많은 일을 해줬는데, 그러면서 이 조언을 해줬다.

"첫 시험에서 반드시 일등을 해라. 그래야 교수나 같이 공부하는 애들이 '얘가 말을 못해서 그렇지 똑똑한 애구나' 이렇게 생각한다."

난 이 말을 새겨들었고,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 얘기를 내가 아무한테나 할 수는 없다. 나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뭐야 이새끼 재수 없네.' 이러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도 이 조언을 사람 가려가면서 해줬다. 아마 그 친구도 그랬을 거다. 똑똑한 친구였으니 당연히 그랬겠지. 이런 얘기는 책에 쓸 수 없었다. 그리고 내 친구도 마찬가지인 것이, 걔는 책을 내면 알아볼 사람들이 많아서 더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게다가 회사 사람들이 알아본다면 몸을 사려야 함이 마땅하지. 내가 좀 졸라서 주재원 생활의 현실적인 면을 추가하긴 했는데,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기로 마음만 먹었으면 더 다이나믹하고 재밌는 내용을 넣을 수 있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여러 모로 봐도 출판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참 아쉽다. 자세한 피드백은 받아볼 수 없었지만, 이 책에 실린 각각의 에피소드로부터 공통의 주제를 묶어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새겨들을만 했다. 그런데 우리 프로젝트의 태생상 한계이기도 했다. 만약 누가 '시카고에서 헤지펀드 트레이더로 살아남기' 이런 책을 갖고 제안을 했다면 받아들여졌을 것 같다. 그런데 어쩌겠나. 나는 트레이더처럼 사람들이 많이 알면서 선망하는 직군에 속해 있지도 않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일 얘기를 하고 싶진 않은데. 아직 어떤 이야기가 책으로 팔릴 수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떤게 안팔리는지는 약간 안 것 같다.

아마도, 아마도 말이다. 내가 책을 또 쓰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에 책 자체가 목적이진 않을거다. 뭔가 이루고 싶은 게 있고 그 수단으로 책을 선택하려면 하는거고 다른 방법을 취하기도 하겠지. 근데 내가 원하는 것들을 리스트업 해보니 책이 효율적인 수단이 될법한 게 안보인다. 이번 일은 글쎄, 좀 책 자체가 목적이었는데, 미국 온 거 10년 기념 혹은 한번의 일탈 정도로 보는 게 적당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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