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

양날의 검, 한국인 커뮤니티

지금이야 내 앞에 있는 친구가 한국에서 왔건 몰도바에서 왔건 다 똑같다. 허나 이제 막 미국에 도착한 사람은 한국인들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영어가 불편하고 현지 사정에도 어두울 테니까. 이 때 만나는 한국인들은 버팀목이 되기도 하지만 루저 되는 급행열차일 수도 있다. 물론, 인간 관계에 대해 참견하는 건 좀 주제넘은 소리다. 사람들이 미국에, 혹은 이 도시에 모이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내가 모든 사람들 다 이해하고 있을 리도 없고, 만난 한인들도 그리 많지 않다. 나는 결국 내 경험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미국에 자기 힘으로 정착하려는 사람들에게 한정된 것이라는 점을 유념하길 바란다.

먼저 아름다운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한국에서 학부나 석사를 졸업하고 해외유학을 나온다면 이미 본인이 속한 과에서 많이 가는 미국 학교가 있다. 알고 있는 형, 동생, 동기들이 거기 있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족보를 나누던 사이이던 그들이 발 벗고 나서 적응을 도와준다. 집을 구하는 것은 물론, 자동차를 사고 핸드폰을 개통하는데 동행해 주며, 환영의 의미로 바비큐 파티까지 열어준다. 다들 비슷한 목표를 갖고 비슷한 공부를 하는 사람들, 게다가 사람들이 많이 있다 보니 그 중에 죽이 정말 잘 맞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가까이 지내는 게 도움이 된다.

그 다음으로는 조금 애매한 이야기. 여기서 지내다 보면 우연히 알게 되는 한인들도 있다. 난 그렇게 가까운 친구도 여럿 사귀었다. 허나 이제 막 새로운 동네에 왔다면 그런 사람들을 조금 경계하는 게 현명한 것 같다. 외국에 나오면 한국인들한테 사기부터 당하고 시작한다는 얘기는 흔하게 들어봤을 거다. 나도, 소소하긴 하나, 비껴가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랜덤이지만, 유독 이 시기에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하기사, 내가 사기꾼 입장을 생각해봐도 목표물로는 한국인이 편할 거다. 게다가 이제 여기 막 도착한, 영어도 서툰, 사람이라면 금상첨화지. 아마 딱 저런 사냥감을 찾아다닐 게다.

마지막으로 절대적으로 어울려서는 안될 한인들이 있다. 노는 것을 목적으로 모이는 사람들이다. 같이 공부하고 일하다가 가끔 기분전환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모이는 것 그 자체가 놀기 위해서인 사람들 말이다.

“한국인들끼리 코리안 타운 전전하면서 형님 아우 하며 소주잔 기울일 거면 안가는 게 낫다고…”

내가 한국에서 이민가방 싸고 있을 때 선배가 해준 얘기다. 그냥 막연히 생각해도 맞는 말 같고 실제로도 딱 떨어지더라. 대충 직관적으로도 그렇고 내 경험상으로도 그러하니 믿고 이대로 하라고 하기엔 그래도 좀 허전하지 않은가? 이게 왜 맞는 말인지 논리적으로 따져봤다.

먼저 그들은 가는 길이 다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위해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을 때는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출발점과 목표이다. 남이 하는 게 아무리 좋아 보여도 이 둘 중에 하나가 다르면 따라하면 안된다. 내 주변에도 매주 날 정해 놓고 모여서 술 먹는 한국인들이 있었다. 걔네들 다 한국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 힘으로 미국에 정착하는 게 목표이기는 했을까 싶다.

목표가 다른 게 대수냐고? 그럼 대수지.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라면 영어 공부 안 해도 된다. 잡 서치도 필요 없고 공부도 차이가 난다. 내가 매일 씨름하는 MBS는 한국에서 그리 인기 있는 채권이 아니다. 논문 실적조차 한국과 미국에서 보는 게 다르다. 미국에 남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과는 할 게 별로 없다. 억지로 뭘 같이 해봐야 본인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두 번째 이유는 그런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풀이다. 유학생들 현지 취업이 좀 쉬운 시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절대적으로 넘어야 할 허들 자체가 높다. 할 일이 많고 어렵다는 뜻이다. 그 밖에도 난 내가 여기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힘들었다. 한국에서의 내 성취에 이곳 사람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어떤 누구가 와도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가 날 떠받들어주는 경우는 없다시피 하다. 한국에서는 길가다 연예인 본 이야기만 해도 사람들이 신기해하는데 말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하찮아지는 기분… 정말 말 못할 일이긴 하다. 그래서 두부 멘탈을 가진 사람들은 결국 한국 드라마만 열심히 봐도 박수 쳐주는 사람들을 찾아간다. 바로 한국 사람 커뮤니티다.

한국 사람들도 훌륭한 사람 많다. 하지만 저런데 가면 어휴... 저기서 어떤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나? 진짜 열심히 노셔야 하는 분들 아니면 비슷한 초딩 멘탈을 탑재하신 분들뿐이다. 한국에 있더라도 멀리 해야 할 영양가 없는 사람들인데 미국에서 붙어 다녀서 뭘 얻을 수 있을까? 더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을 것으로 믿는다. 저런데 발 걸쳐볼까 한다면 그냥 오지 말기를 권한다.

다시 말하지만, 내 이야기는 본인의 힘만으로 여기 정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뭐든 본인에게 합당한 걸 하면 되는 거니까 그 이외의 사람들은 알아서 하시라. 또 하나, 사람을 의식적으로 조심해야 하는 시기는 길게 봐야 여기 온지 1, 2년까지이다. 내 생활에 중심이 잡히고 나면 엉뚱한 사람에 말려드는 일이 드문 것 같다. 그런데 왜 굳이 초반 몇 년인지 대충 감이 오지 않는가? 사실 이게 다 외로움 때문인 것 같다. 외로움을 극복하든지, 익숙해지든지 하면 괜찮은데 그 전이 문제인 것이지. 어쩌면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보다 외로움을 각오하고 오라는 말이 더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될런지도 모르겠다.

————————————————————-
본문은 ‘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반응형

'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What you pay is what you get  (0) 2021.03.23
Shall we dance?  (0) 2021.03.23
이렇게 교포가 되어간다  (0) 2021.03.10
관대한 기부 문화  (0) 2021.03.10
박물관에 자주 가는 이유  (0) 2021.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