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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새 동네에 적응하는 과정인 건가

나이가 좀 있는 집에 이사를 들어와보니 정말 고칠 게 많다. 문제도 많고, 꼭 뭐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더라도 그냥 페인트 색깔 바꾸고, 스프린클러 잔디에 깔고 등등 이런 것들 하나하나 다 사람을 써야 하니 연락을 해볼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그런데, 요즘 나만 그런 건 아니지만, 진짜 사람이 안 구해진다. 연락을 해도 답을 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스프린클러 업체는 예전 집주인 아저씨로부터 추천을 받았는데, 두달 째 한번 와 보겠다 소리만 하다가 이제는 답장도 안온다. 뭐 백그라운드는 이 정도 하고.

난 어째 예전 집주인을 알게 됐다. 이 아저씨가 이사 오자마자 해야 할 일도 세세하게 알려줬고 내게 어린 아이들이 있는 걸 알고는 아이들용 가구도 제법 남겨주고 말이지. 신경 써주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그럴 사람이 없지만 굳이 해준 거 아닌가. 이런 배려 하나하나가 너무 고마웠다. 사람이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지. 와인 셀러까지 만든 걸 보면 술을 즐기는 사람은 틀림 없고 해서 내 비밀 무기인 와인 두 병을 선물했다.

역시 선물은 주면 다 좋아한다. "아니 뭐 이런 걸 다" (You don't have to do that) 이러면서도 아주 싱글벙글 하더라. 어차피 이 아저씨도 이 동네 계속 살고 하니까 오다가다 많이 보게 될 거고 앞으로 잘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할로윈 날 우리 애들이 찾아간 집 중에 하나가 이 아저씨 집이기도 했고. 하지만 뭔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선물을 준비한 게 아니라 그냥 그동안 받은 배려가 고마워서다.

이사 들어온 지 사흘째 된 날 리빙룸 천장에 물이 새는 걸 발견했다. 아무리 집을 살 때 inspection을 했어도 뭐 하나 잘못된 게 없는 집이 어디 흔하겠나 싶다. 그래도 물이 샌다니... 진짜 뒷골이 땡긴다는 게 은유적인 표현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그러더라니까. 예전에 살았던 집에 물이 샌 적이 있는데, 원인을 찾는 데만 꼬박 열 달이 걸렸다. 그 동안 벽 뚫어놓고 살았다. 그 짓을 이사 오자마자 해야 한다니, 아내 앞에선 의연한 척 했지만, 한숨이 안나올 수가 없다.

예전 집주인 아저씨가 알려준 plumber에 연락을 했다. 뭐.. 차일피일 미루더니 오게 하는데만 닷새가 걸렸다. 그나마 오전에 오겠다더니 오전에는 당연히 나타나지 않았고 오후에 느긋하게 와서는 water damanger를 한번 쓱 올려다 보더라. 그리곤 실망스러운 말을 쏟아냈다. 자기네들은 문제의 원인을 찾는 걸 하지 않는단다. 그냥 "어느 파이프가 새니 교체해주십쇼." 이러면 견적 내고 일을 할 뿐이라네. 아니 이 양반이 왜 이런 말을 지금 하는 건가? 이건 전화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잖아? 내가 이딴 소리를 들으려고 닷새나 기다린 줄 아나. 진작 말을 해줬으면 다른 누구를 불러도 불렀지. 게다가 닷새나 기다려야 한다는 걸 미리 말해 줬어도 다른 플러머 불렀다 이 양반아. 이 무책임한 사람을 돌려보내고 급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아니 근데, 저걸 플러머가 아니면 누가 한단 말인가. 다른 플러머들은 다 확인해 준다는데 왜 저 플러머만 이랬을까. 아무튼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는 와중에 예전 집주인 아저씨에게도 연락을 해봤다. 그러자 그 아저씨가 이 집 리모델링을 했던 빌더 아저씨에게 연락을 했고. 한시간 반 후에 그 빌더 아저씨가 우리집에 와서는 천장을 쓱싹쓱싹 잘라내고 원인까지 밝혀냈다. 그 자리에서 수리 일정까지 잡은 건 물론이다. 너무 반갑고 고마우면서도 내가 지난 닷새 동안 뭘 한 건가 싶었다. 이 빌더 아저씨는 내가 애타게 연락을 해도 바쁘다며 몇 주 더 기다리라고 했던 분인데 이 동네 주민 아저씨가 연락을 하니까 한시간 반 만에 와 준거지.

요즘 컨트렉터들 다 바쁜 건 나도 잘 안다. 이러니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연락을 하니 잘 안 오고 연락도 안 주는 건데, 이 와중에도 지인이 연락을 하면 시간을 쪼개서 봐 주는 모양이다. 대신 나 같은 사람은 그만큼 뒤로 밀리는 것이고. 이걸 뭐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인 찬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인지상정이다. 나도 빨리 이 동네에 녹아들어서 지인들 많이 만들어서 무슨 일 있을 때마다 네트웍을 가동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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