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예전 일이 하나 생각났다. 우리 둘째는 음식을 먹다가 뱉는 습관이 있었다. 더 맛있는 음식이 나타났다거나, 이제 그만 먹고 싶을 때는 입에 있는 걸 그냥 뱉아버린다. 처음엔 아무데나 뱉았는데 교육을 그나마 시켜서 아빠를 부르고 아빠 손에 뱉는다. 이러는 게 청소하기가 편하다.
그 날도 그랬다. 사과를 줬는데 한참을 먹더니 내 손에 뱉더라. 그래서 내가 그걸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시 소파에 앉았지. 그러니까 첫째가 와서 내 무릎에 앉았다. 둘째도 혼자 잘 놀고 첫째도 책을 잘 보고 있는데, 손에 사과 조각이 아직 붙어 있는 걸 봤다. 아까 깨끗하게 버린다고 했는데 아니었나보지. 첫째가 무릎 위에 앉아 있는데 또 쓰레기통에 가기 귀찮아서 그냥 먹었다. 좀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겠지만, 아빠 돼 보면 별 수 없다.
입에 그 사과 조각을 먹는 순간이었다. '사과가 왜 이렇게 짜지?' 하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첫째가 깜짝 놀란 얼굴로 돌아보며 "아빠 그거 왜 먹어?" 하는 거다. 그 순간 알았다. 내 혀에 올라 있는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첫째의 코딱지였던 것이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있나. 서둘러 첫째를 내려놓고는 화장실로 뛰어갔다.
진짜 아빠가 돼니까 별 일을 다 겪는구나 싶다. 우리 아버지는 그래도 내 코딱지를 드신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참... 첫째에게도 어지간히 충격이었는지 그렇게 놀란 얼굴을 한 건 지금까지도 못봤다. 첫째는 아직도 코딱지를 파고 나면 꼭 아빠를 불러서 버려달라고 한다. 뭐 아무데나 버리는 것보다야 백번 낫지. 그래도 말이라도 해주는 게 어디냐. 또 잘못 알고 먹을까봐 아빠를 걱정해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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