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계 올림픽이 한창이다. 외교적으로 뭐가 어쨌다 해도, 올림픽은 운동 선수 커리어의 정점이다. 참가자들 중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화제가 될 수 밖에 없다. 금메달 딴 선수가 한 둘이 아닌데, 아무래도 조명을 조금이라도 더 받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 두 사람이다. Chloe Kim, Nathan Chen
Chloe Kim은 지난 평창 올림픽에서 이미 금메달을 땄고, 이번에도 금메달을 수성해냈다. 한인 2세이고, 사는 곳은 LA 근처인 것 같다. 그녀의 아버지는 성장한 후에 미국으로 이민 와서 공부하고 엔지니어로 일을 했다고 한다. 딸의 재능을 발견해서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그녀가 만개하도록 도왔다. 그녀의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 남자처럼 탄다는 느낌이 났다. 여느 여자 선수들과는 조금 다르다. 물론 그녀가 성공한 후 그녀와 비슷하게 타는 여러 선수들이 등장했고, 이번에 일본 선수가 아주 잘 해서 메달도 따던데 특히 아시아계 선수들에게 귀감이 된 듯 하다.
Nathan Chen도 중국계 이민 2세이다. 그의 부모도 성장한 후에 미국으로 이민와서 과학자나 엔지니어 비슷한 직업을 가졌다. 역시 아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전폭적으로 밀어줬다. 피겨 스케이팅은 내가 딱히 관심가지는 종목은 아니다. 그런데도 미디어에서 자꾸 다뤄지니까 경기를 보게 되었다. 다른 선수들과 확연히 다르더라. 일단 이 청년은 춤을 굉장히 잘 추는 것 같다. 이따금씩 보여주는, 아마도 프로그램에 무조건 집어넣어야 하는 것 같은데, 점프 같은 피겨 스케이팅 기술이 생뚱맞아 보일 정도였다. 그냥 저런 기술 안 쓰고 춤만 계속 추는 게 더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즐겁고 멋진 퍼포먼스였다.
내 편견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둘의 이야기가 미디어의 조명을 받는 이유는 미국인들이 보고 싶어하는 이야기라서가 아닐까 싶다. 타국의 인재가, 미국의 시스템 속에서 성장하여, 가능성을 만개한다는 이야기 말이다. 뭐 얘네들은 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다 성장한 후에 미국으로 왔으니 얘네들도 타국산 인재라고 뭐 쳐두자. 이러면 대충 아메리칸 드림 이야기 같다. 바로 미국의 자부심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아메리칸 드림을 얘네들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나와 아내도 한국에서 미국으로 왔는데, 우리 애들이 뭔가 대단한 걸 성취하면 좋겠지만 뭐 그런 걸 바라지는 않고,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들보다는 조명을 덜 받지만, 그래도 내게 중요한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Shaun White. 사실 그도 나이를 먹었고, 이번 대회의 메달 전망은 밝지 못했다. 결과도 그렇게 나왔고. 그래도 마지막 연기를 마치고 눈물을 쏟는데 참... 내 가슴이 뭉클하더라. 거기 있는 선수들의 축하를 받고 작별인사를 나누는 걸 봤다. 그동안 치열하게 경쟁했던 상대를 존중하고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린지 본이 없었어도 미카엘라 쉬프린은 지금의 인기를 누렸겠지만, 숀 화이트가 아니었다면 그들 중 아무도 지금의 위치에 있지는 못할 것이다. 같이 경쟁하는 선수들도 결국은 그가 닦아온 길을 온 것이니 저런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는 게 가능했겠지. 이건 마치 한 세대가 저문 듯 했다. 장말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이었고 앞으로의 길을 응원한다.
이번 금메달은 히라노 아유무가 가져갔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선수다. 솔직히 소치 올림픽 때 금메달 딴 선수는.. 뭐 정상급 선수이긴 한데, 좀 뽀룩 같았다. 운만 좀 따라줬으면 소치부터 지금까지 3연패가 가능했던 선수다. 다만, 이게 점수에 들어가는지는 모르겠는데, 좀 박력이 부족한 느낌인데 이건 작은 체구의 한계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연기를 멋지게 해냈는데 점수가 좀 낮다 싶을 때가 좀 있다. 체구가 작으니 묘기 부리기 유리한지 모르겠는데, 따라서 힘이 좀 느껴지지 않는 건 아쉽고. 그래도 정말 대단한 선수다.
그리고 미카엘라 쉬프린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선수가 시작하자마자 코스를 이탈하는 건 진짜 내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한 번도 아니고 주종목 두 개에서 모두 초반에 실격되다니 진짜 김병현이 월드시리즈 9회 말에 이틀 연속으로 홈런을 두드려맞았을 때의 충격에 버금갔다. 저런 식으로 실격된 선수가 대충 40%에 이른다니 진짜 설질이 그냥 빙판이든 코스가 너무 어렵든 한 것 같은데 그래도 진짜 최고의 선수가 저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말이다. 역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게 스포츠인 것 같다. 아니 세상 일이 다 그렇네. 스포츠가 인생의 축소판이라더니 진짜 그렇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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