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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대학교 신입생의 첫번째 미스테리

대학에 입학하면서 고등학교와 전혀 다른 풍경이 열렸지만, 사실 대학생 드마라 같은 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대학생활로부터 뭘 기대해야 할지는 잘 몰랐다. 나에게 가장 먼저 인상적이었던 것은, 수 많은 사람들이 내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주로 동아리에 리쿠르트하려는 선배들이었는데, 이유야 어쨌든 다양한 선배들을 보고 겪게 되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소위 '운동'하시는 분들이었다. 테니스나 농구 같은 거 말고, 학생 운동 말이다.

그 선배들은 우리가 비록 학생이지만, 사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서 학생운동을 한다고 했다. 주로 '민주주의'에 대해서 말이다. 때는 90년대 말이었고, 한국 정치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탈이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 선배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 멀다고 했다. 그 때만 해도 가끔 전경들이 학교 앞을 틀어막아서 과외를 못 간다거나 전경들이 학교 안으로 들이닥치기도 했다. 불심검문도 흔했다. 한번은 학교 잔디밭에서 선배들과 맥주를 마셨는데 맥주병을 버릴 장소가 마땅치 않아 가방에 집어넣고 학교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에휴.. 그 때 선배가 말려서 망정이지, 잘못했다가 화염병 제조한다고 오해받아 잡혀 들어갈 뻔 했다. 뭐 이런 분위기였으니 정부가 민주적이지 못한 대신 권위적이고 때론 폭압적이라는 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었다. 거기에 맞서는 학생들이라니 좀 낭만도 있는 것 같고.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이, 운동권 선배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권위적이었고 강압적이었다. 윽박지르는 거나 좋아하고. 아무리 그 때 술 억지로 권하는 게 그리 별난 일이 아니라지만 운동권 선배들이 유독 심했다. 그게 술자리에서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그냥 평소에도 그랬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민주주의 그렇게 좋아하시는 분들이 왜 평소 행실은 반대일까? 난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뭐 그런게 성향에 맞는 애들은 그렇게 다뤄주면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한데 난 아니었다. 오히려 공부하는 선배들, 대학원생 형들이 말도 훨씬 잘 통하고 편했다.

또 다른 차이 하나는, 운동권 선배들은 공부를 전혀 안하더라. 가끔 운동 하면서도 학과 공부 열심히 하고 대학원 간다 하는 선배도 있긴 했는데 아주 진귀한 예외일 뿐 운동 좀 한다 하면 공부를 우습게 아는 경향이 분명히 있었다. 운동하는 동기도 수업에 거의 안들어오다시피 했다. 가끔 수업 전에 봐도 공강시간에 선배들에게 끌려가서 거나하게 한 잔 한 터라 같이 가자고 하기도 뭣 했다. 난 훌륭한 엔지니어나 공학자가 되기 위해서 공대에 왔기 때문에 그냥 나하고는 가는 길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거리를 뒀다. 그래도 불편한 점은 있었다. 선배들이 술먹자고 했을 때 시험이 임박했다거나 아직 그날 남은 수업이 있다면 당연히 거절한다. 그런데 이 이유가 보통 선배들에게는 먹히는데 운동 하는 사람들은 전혀 타당하게 여겨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수업에 들어가서 수치해석하는 방법, 뭐 Newton's method 같은 거, 하나 배우면 전에는 못 풀었던 문제를 풀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 선배들하고 잔디밭에 앉아서 술을 먹으면 내가 뭘 얻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뭔가 얻을 수 있다고 치자. 그래도 그게 정말 Newton's method보다 나은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냥 수업에 빠졌다는, 소소한 일탈을 저지르는 데 따른 재미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그냥 비슷한 재미를 수업 끝나고 봐도 되는 것 아닐까? 이건 뭐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게 특유의 권위적인 성격까지 있다보니 상대하기 아주 껄끄러웠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아니 대학교 졸업하고 더 그런 경향이 굳어졌는데, 내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좀 받아들여지는 게 안된다. 그런 거 억지로 하는 일도 거의 없고. 끌려가서 해봐도 대충 다 결과도 안좋다. 그래서 그들과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같은 이유로 교회에 열심을 쏟아붇는 형들도 나를 저 속된 무리 보듯 했는데, 교회 광신도 선배들이나 운동 열심히 하는 선배들이나 내가 보기엔 거기서 거기다.

운동 그렇게 하다가 군대 다녀왔다 치자. 그런데 이미 학점은 박살났지. 그렇다고 공부를 따라가기에도 기초가 없고. 이러니, 그나마 철 든 애들이, 선택할 수 있는게 고시다. 그나마 정신 차린 애들이 하는 게 고시고 안그런 애들은 하던 짓 계속 하더라. 그러다 잘 풀리면 정치 쪽으로 가는 거고, 대놓고 그 테크를 노린다는 소리도 많이 들려왔는데, 가만 생각해보자. 배움을 우습게 알고 허구헌날 정권 퇴진운동이나 하는 판단력을 가진 애들도 발붙일 데가 있는 곳이 정치판이라면 거긴 진짜 아사리판이겠다 싶었다.

뭐 하여간,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남에게는 민주주의를 그렇게 강조하면서 본인은 왜 반대로 행동을 하는지. 그리고 내가 학교 수업에서 배우는 것들이 본인이 강의실 밖에서 하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지. 난 정말 궁금하다. 아마도 그들은 이 정도 생각도 안해봤다는 게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싶지만 말이다.

물론 운동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 억울한 사람도 많을거다. 각자 할 말이 많겠지. 나는 그냥 my own story를 얘기하는 거고, 그런 면에서는 틀린 말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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