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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바람직한 교육은 ‘여름날의 추억’이었네

내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게 국민학교 2학년 때다. 바야흐로 체르니를 시작하자 어머니께서는 피아노 선생님에게 찬송가 반주를 포함시키게 했다. 그런데 찬송가 반주는 어렵다. 거의 모든 터치에 화음이 4개씩이나 들어간다. 거기다 다 장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찬송가 반주는 이제 체르니 30을 치네 마네 하는 아이에게는 많이 버겁다. 피아노 선생님도 어렵다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 어머니께서 고집을 피우신 모양이다. 뭐 어느 누가 체르니 시작하더니 찬송가 반주를 하더라 이런 거 들으셨겠지. 재능이 특별한 애는 그랬을 수 있는데, 나는 아니었다. 아무튼 그래서 연습곡에는 매번 찬송가가 껴 있었고, 나는 적지 않은 시간을 거기에 쏟아부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찬송가를 치고 싶지 않았다. 아름다운 곡들이야 물론 많은데, 초딩이 그런 거 치고 싶었겠는가. 대중 가요를 치고 싶지. 차라리 그게 더 쉽기도 하고 말이야. 뭐… 어릴 때부터 믿음이 신실한 나머지 꼭 찬송가만 아름답게 들리는 그런 애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난 아니었고 그런 애들도 못 봤다. 하지만 나는 그 어려운 찬송가를 한 땀 한 땀 쳐야했다. 어쩌다가 대중가요 멜로리라도 짚는 날에는 어머니께서 눈에 쌍심지를 키고 불호령을 내렸다.

하기 싫은 건 둘째 치고, 문제는 찬송가를 연습하는 게 내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찬송가가 아니라 리스트 에튀드, Wilde Jagd이런 거, 연습했어도 마찬가지다. 당시 내 수준에 지나치게 버거웠기 때문이다. 이제 축구공 처음 차 보는 초등학생에게 하루 종일 이영표의 헛다리 짚기만 연습시킨다고 생각해봐라. 뭐가 제대로 되겠나. 턱걸이 1개 겨우 할까 말까 하는 사람에게 무조건 맨몸으로 당기기만 시키면 턱걸이가 늘겠냐. Pull-up band를 사용해서 assisted pull-up을 여러개 연습시키면 턱걸이 갯수가 빨리, 안전하게 늘어날텐데 말이다. 이렇듯 학생의 수준에 맞는 적절한 자극을 주어야 효율적으로 배움이라는 게 일어난다. 커리큘럼이라는 게 괜히 있는 줄 아나.

배움이란 걸 안 해보신 분들은 무조건 빡센거 빡세게 시키면 되는 줄 안다. 본인은 해 본 적 없지만, 자식에게 그렇게 시킨다. 물론 선의로 하는 거긴 한데, 실상은 그냥 본인 욕심에 애만 잡는거지. 이래서 무식한 엄마가 자식 사랑한다고 잘 키우는 게 아닌거다. 애가 피곤해 뒤질라는데 무조건 책 몇 장 읽게 시킨다거나, 잠을 안 재운다거나. 이런 학부모들 여럿 봤다. 뭐 이게 잘 하는 짓이 아닌데 괜히 옆집 누가 뭐 어쨌다 소리 줏어듣고 애만 괴롭히는 거지.

아이에게 정밀하게 자극을 줘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대충 막 굴리면 비효율적이다. 안 하는 것보다야 낫긴 한데, 애를 겨우 안 하는 것보다 나은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뭘 시키는 부모는 못 봤다. 하지만 정밀한 자극은 어렵다. 아이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펴야 하고, 아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이해해야 한다. 피곤한 몸으로 퇴근해서, 애들한테 니 방에 들어가서 공부해라고 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교육을 잘 시키는 건 절대 공짜가 아니다. 아무 것도 안 해줘도 아이가 스스로 뭘 잘 하더라 이런 케이스가 없진 않은데,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에는 해당되지 않으니 괜히 그런 소리 줏어듣고 억울해 하면 안 된다.

어머니께서 왜 그리 찬송가에 그렇게 집착하셨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집에 손님만 오면 나에게 찬송가 반주를 시키고 노래를 부르시더라고. 우리는 평소에 이런다면서. 교인들이 보기에는 얼마나 신실해 보이는 풍경이냐. 그러나 우린 평소에 그런 적 없다. 손님이 있을 때만 그랬다. 결국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였던 거다. 뭐 이런 욕심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사람이 어떻게 욕심 없이 사냐. 단지 경계해야 할 지점이 있다는 거지. 욕심은 판단을 흐리고, 남에게 투사될 때 고통을 준다. 욕심이 있더라도 내가 뭘 하는 게 되어야지. 남이 뭘 해주는 게 내 욕심이 되면 안 된다. 이게 참 흔한 실수이고 나도 자식 키우는 부모로써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그리하여 나의 피아노는 어떻게 됐나? 나는 피아노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실력은 그저 그렇다. 그래도 듣기 좋은 뉴에이지 곡 정도는 도전할 배짱을 주었고, 그런 곡들을 완성해가는 재미는 느낄 수 있다는 데에 만족한다. 허나 무언가 적절한 자극이, 이를테면 ‘여름날의 추억’ 이런 거, 찬송가 대신 있었다면 더 즐겁고, 오래 피아노를 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마누라가 첫째 아이의 진도가 다른 아이들보다 천천히 나간다고 뭐라 할 때마다 나는 말린다. 내 목표는 쇼팽 에튀드를 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는 거였는데, 아이고 이게 나이 먹고 다시 쳐서 되는 일이 아니더라고. 뭐 그냥 다음 생에 이룰 꿈으로 접어놔야지. 애초에 내게 재능이 있었다면 그 시절에 찬송가를 갖고 왔든 뭐든 다 되었을 거란 생각도 들지만, 뭐 난 그렇지 않은 걸 뭐 어쩌겠나. 내게 재능이랄 게 없었기 때문에 낮은 수준에라도 오르려면 정교한 가르침이 필요했었던 것인데, 뭐 반면교사로 삼아야지. 어머니도 악의를 갖고 한 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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