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교도 다 졸업했고, CFA 시험 끝내고 나서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공부는 이제 안 한다 뭐 그래 생각했다. 실제 그리 살기도 했고. 그런데 애들이 학교를 가면서 얘네들을 도와줘야 되다 보니까 다시금 공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네. 내가 공부에 대해서 논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소리 할란다.
사람의 가치가 어디 있는가 뭐 그런 철학적인 얘길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근데 사람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데 사람의 가치가 있다고 치고, 그럼 그 가치는 어디서 오는가? 누군가는 손이나 발에서 오고, 아름다운 외모에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두뇌에서 온다. 그렇다. 두뇌가 바로 호모 사피엔스의 특장점이고, 두뇌에 든 것이 많고 두뇌의 성능이 뛰어나면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고 기대를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어디 나왔는지 사람들이 물어보고 좋은 학교 출신이라면 영양가가 많을 것으로 짐작을 한다. 그러니까 많은 것을 배우고 정교한 사고 능력을 키우는 게 공부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자기 절제 같은 것도 배우게 되는데 이건 꼭 공부를 통해서만 길러지는 건 아니니깐 논외로 치자.
자 그런데 생각은 머릿 속으로 한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인데, 여기서 기인하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1) 공부를 억지로 시킬 수는 없다.
(2) 머리가 풀 가동이 되는 환경에서 공부의 효율이 난다.
먼저 왜 공부를 억지로 시킬 수 없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간단하다. 머릿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깥에서 통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손 발로 하는 거야 뭐 억지로 시킬 수가 있지. 운동장 몇 바퀴 돌고, 스쿼트 무게 정해놓고 몇 세트 치고 이런 거 말이야. 그런데 머릿 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는 건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다. 고작 해봐야 공문 수학 같은 거 풀게 하는 거 뭐 이런 건데, 그건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나 그렇지 그 이상의 수준의 머리를 억지로 쓰게 만드는 건 안 된다.
뭐 그거라도 잘 하는 게 어디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실제로 성인이 돼서도 간단한 계산도 잘 못해서 주변 사람 고생 시키는 꼴 본다. 하지만 사람이 고작 가축 수준 좀 벗어나라고 공부에 신경을 쓰겠나. 잘 하고 싶으니까 신경을 쓰는 건데 옆에서 억지로 시키는 방법으로는 머리를 쓰면서 공부를 하게 할래야 할 수가 없다. 오히려 최대한 머리 안 쓰는 방향으로 하겠지. 문제는 몇 페이지 풀었는데 정작 머리는 별로 안 썼다 이러면 공부의 효과가 없다. 결국 본인 스스로 하지 않으면 잘 한다 소리는 들을 수 없는 게 공부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공부는 옆에서 억지로 시킬 수가 없다. 이러면 옆에서 누가 그런다. 누구 누구는 애를 스파르타식으로 잡았더니 성적이 오르더라. 그럴 수 있지. 그런데 그렇게 넣어줄 수 있는 것들은 단순한 것들 뿐이다. 못 하는 애를 보통 정도로 밀어올릴 수는 있겠지만 공부를 아주 잘 한다 싶은 수준으로는 못 간다. 그리고 고등학교, 대학교 혹은 그 이상의 수준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공부를 하는데, 스파르타 식으로 잡는 부모나 선생이 있는 경우는 많다. 근데 아쉽게도 그 애들은 그렇게 안 해도 잘 할 애들이다. 헛수고 정도가 아니라 방해를 하신 게다. 그냥 놔두면 혼자서 고민도 하고 실수도 하면서 배워나갈텐데 옆에서 지랄하면 그런 과정 다 생략하고 답 내는 법만 익히게 된다. 물론 당장 비슷한 문제 나오면 시험 성적이야 몇 점 더 받겠지. 그런데 그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 내가 학창 시절 때 기준으로 말하면, 고등학교만 가도 그런 식으로 공부한 애들은 뒤쳐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두번째, 머리가 100% 풀 가동이 되는 상황에서 공부가 잘 된다. 스쿼트를 하는데, 발바닥에 뭔 가시가 박혀 있다고 생각해봐라. 평소에 치던 무게의 반이나 치면 다행이다. 빨리 그걸 빼 내고 운동을 해야지 그 상태로 계속 해봐야 그날 운동 제대로 못 한다. 마찬가지다. 머리를 최대한 빡세게 굴려야 하는 게 공부인데,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공부가 안 된다.
그럼 공부에 집중할 수 없게 하는 게 도대체 뭐냐 뭐 이런 게 궁금한 사람이 있겠지. 대표적으로 애가 집에서 불안하면 안 된다. 허구헌 날 트집거리 찾아서 잡아 패는 부모가 있는 집에 사는 아이는 공부를 잘 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건 애가 뭐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 아닌가. 그냥 그러고 살아야만 하는데 이건 발바닥에 압정 꽂혀 있는데 스쿼트 치는 거랑 똑 같다. 쉽게 말해 애가 두뇌 성능 50% 저하되는 핸디캡 안고 있는 거다. 똑같이 공부를 해도 머리에 반 밖에 안 들어간다는 소리다. 머릿 속에 저렇게 큰 걱정거리가 들어 있는데 어찌 두뇌 100% 가동이 되겠나. 성적 갖고 뚜드려패는 거면 뭐 괜찮은 줄 아는 부모도 있는데, 그건 니가 공부를 잘 한 적이 없어서 그런 거고 절대 괜찮지 않다. 애가 그리 불안한 상태면 아무리 본인이 공부를 하려고 해도 머릿 속에 잘 안 들어간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대학교 때 주거 관련해서 존나 문제를 겪은 적이 있다. 집이라고 정해놓은 데 처음 들어가는 순간 이건 좆됐다는 걸 알았지. 그런데 여기 간 건 내 뜻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거기다 나를 집어넣었고 거기서 나오려면 역시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다. 그러니까 내가 콘트롤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거다. 나도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아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서 거기서 나오려고 했는데 그래도 거기 억지로 있어야 했다. 진짜 머리로는 학업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걸 알았고 꿈도 있었지만, 진짜 공부가 안 되더라. 그리하여 그 학기 학점이 2점대 초반 나왔다. 아니 진짜 수업 전출을 한 사람 중에 이렇게 낮은 학점 받아 본 사람 어디 있을까? 거기서 나오자 마자, 아니 내 느낌으로는 딱히 대단히 뭘 하지도 않았는데, 학점이 3점대 후반으로 올라가대. 알바 하고 여자 친구 있었던 건 마찬가지였고 오히려 놀기는 더 놀았는데.
뭐 사람이 뜻만 있으면 열악해도 다 된다 이래 말하는 사람도 봤는데, 이걸 열악해도 된다고 받아들이면 안 된다. 환경이 열악하면 당연히 안 좋지. 그렇다고 환경만 좋게 마련 되면 다 된다는 뜻은 아니다. 본인이 할라고 해야지.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뜻이 없었다면 2점대 초반 대신 0점대 방어율 어쩌고 했겠지. 아휴.. 진짜 거기서 하루라도 빨리 나왔어야 했는데 아… 내 학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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