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읽지 않을 수 없는 소설이다. 또한 영미권 문학 희대의 걸작으로 추앙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도 당연히 읽었지. 무라카미 하루키를 알게 된 20대 초반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으로 읽었다. 그런데 솔직히 끝까지 읽지도 못 했다. 눈은 글자를 읽는데 뭐 와 닿는 게 없었다. 머리에 그려지는 그림도 희미하기만 할 뿐. 대단한 작품임에 틀림이 없는 모양인데 나한테는 왜 이럴꼬 하며 아직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 뭐 이래 생각했다. 솔직히 전문가들의 극찬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소설을 형편 없는 작품으로 치부했을 게 분명하다.
다시 이 책을 집어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꾸준히 읽고 있으니 역시 그의 영향으로 말이다. 나는 중년이 되었고 이 소설이 태어난 미국에서 살고 있다. 비록 소설의 배경인 동부가 아닌 중서부에 살고 있지만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 지식만 따지자면야 20여 년 전의 나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 서 있으니까. 단적인 예로 난 이 시대에 금주법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근데 지금은 아니까 훨씬 뭐 이해가 잘 될 것이다… 이런 기대를 갖고. 그런데도 역시 헛된 꿈으로 판명났다.
내가 세계 1차 대전 직후의 미국이 어땠는지 잘 모르니까 배경 지식이 충분치 않은지도 모르겠다. 그 때문인지 캐릭터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아니 잘 모르겠다. 개츠비가 어떤 사람인지 데이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톰 뷰캐넌의 모습도 역시 희미하다. 소설이 너무 짧아서 그런 것인지… 토지는 1부 1권만 봐도 머릿 속에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그들이 하는 행동, 대사 하나하나가 다 와닿던데 그런 걸 보면 길이 문제는 아닐테고. 머릿 속에서 캐릭터 구축이 제대로 안 되어 있다보니 문장 하나하나는 공들여 쓴 것 같고 훌륭한데 읽어도 느껴지는 게 없었다. 특히 이 캐릭터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할 초반부는 그저 산만하게만 느껴졌다.
아 안타깝다. 이 소설은 수많은 이들의 깨달음과 감정을 모질게 자극하는 모양인데 어찌하여 나에게는 와 닿는 게 없단 말인가. 손에 보물을 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게 아깝기도 하고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기도 하다.
뭐 느낀 게 아예 없지는 않은데, 번역가가 단 16 페이지 분량의 해설을 읽어야만 아 뭐 그럼 이런 식으로 이해를 했었어야 하는 거구나 싶다. 해설을 읽어야만 느끼는 게 있는 거라면 벌써 문제다. 재밌는 건 번역가 마저도 자기가 옛날에 이 소설의 번역판을 읽었는데 ‘인물들이 선명하게 잡히지 않아서’ 끝까지 진도도 못 뺐단다. 또한 세간의 악평을 알고 있으며 바로 이 이유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확하게 봤다. 그리하여 세간의 평가를 뒤집을 수 있는 제대로 된 번역판을 만들겠노라고 호기롭게 달려들었고 나름 성공했다고 자평하는 듯 한데, 뭐… 아쉽게도 나에겐 그저 그랬다.
앞으로 다른 번역판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볼 것인가 하면 안 할란다. 진짜 두 번역판을 읽었는데도 내가 느낀 게 이런 거라면 번역이 무지하게 어렵다는 얘긴데 이 두 사람이 실패한 것을 다른 천재가 홀연히 나타나 멋지게 홈런을 친다고라… 확률이 너무 희박하다고 본다. 하지만 앞으로 또 다른 번역판을 나올 것이다. 이미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 대박 유전이 묻혀 있는 게 분명하다면 또 다른 누군가가 파내려 할 것이니까.
다만 원문으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원문으로 읽은 게 거의 확실하고 원문으로 읽은 사람들이 혹평하는 건 못 봤으니까. 내 영어 실력이 충분한지는 모르겠는데 기회가 되면 대하소설 토지에 도전했던 바로 그 기분으로 시도해봐야지.
뭐 소설이야 그렇다 치고. 디카프리오 형님이 나오는 영화도 봤다. 좋은 영화라고는 말 할 수 없다. 디카프리오는 개츠비 역에 너무나 딱이었는데 영화를 잘 못 만들었다. 특히 플라자 호텔에서 톰 뷰캐넌이 개츠비의 실상을 폭로하고 개츠비가 데이지에게 어줍잖은 변명을 하는 장면, 개츠비가 다시 데이지를 잃게 되는 아주 중요한 장면인데 그걸 뭐 그냥… 어휴 말을 말자.
훌륭한 소설이라는데 제대로 된 번역본도 못 만나봤고, 영화도 그저 그랬고… 그 위대함을 느껴볼 수가 없네.
'Simple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부에 대한 내 생각 – 생각하는 능력 (0) | 2024.09.29 |
---|---|
교외의 단독 주택 유지 보수 (0) | 2024.09.25 |
우리 아들이 축구를 한다 (1) | 2024.09.17 |
날 빼다 박은 우리 둘째 (0) | 2024.09.17 |
안타까운 새 물고기들 (2) | 2024.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