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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제 2의 강남스타일

10년도 더 넘은 일이네. 여느 때처럼 NPR 채널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오빤 강남 스타일” 이러는 거 아닌가. 아니 도대체 내가 듣고 있는 게 뭐였지 하면서 다시 확인했는데, 이건 분명히 미국 라디오 맞았다. 며칠 전에 비슷한 일이 생겼다.

알렉사 스피커가 기상 나팔은 아니고 알람으로 노래를 틀어줬는데 “아파트 아파트” 하는 게 아닌가. 이거 내가 아는 콩글리시 아파트 맞는 것 같은데 얘가 한국 노래도 틀어주나 싶더니 뒤 따라 나온 목소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브루노 마스였다. 이거 참 농담 같은 조합이다 싶었지. 그런데 노래는, 브루노 마스 노래답게, 장난이 아니었다. 내가 요즘 노래를 안 들어서 얼마나 트랜드나 뭐 이런 건 모르겠지만, 만듦새가 정말 장인이 한땀 한땀 공들여 쌓은 바로 그것이었다.

알고보니 K-pop 여자 가수가 무려 브루노 마스와 협업을 해서 내놓은 노래이고, 이미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상황이었다. 야 이거 진짜 제 2의 강남스타일이구나 싶었다.

미국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형식에, 미국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검증된 컨텐츠를 넣어서 만들어 놓으면 그냥 흔한 아류작일 뿐이지. 비슷한, 그리고 아마도 더 나은, 미국 꺼 대신 한국 꺼를 들으라고 설득할 수가 없다. 그런 거 말고, 형식이든 컨텐츠든 한국 사람 아니면 하지 못할 걸 만들어서 내 놔야 새로운 게 되고, 뭐 당연히 리스크야 있겠지만, 히트를 쳐도 크게 치는 것 같다. 개인적인 게 창의적이고 한국적인 게 세계적이라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그리고 K-pop 혹은 한국 사람 특유의 low-profile, 혹은 소박함이 인기의 비결이 아닌가 싶었다. 한국이나 일본 사람들은 겸손하고 조용하다. 중국 사람에 비하면 확실히 좀 그런 면이 있다. 어느 한국인 친구가 해준 이야기인데, 이 친구는 그냥 대놓고 백인 동네에 살고 있다. 거기 중국인, 한국인 조금씩 섞여서 살고 있지. 주민들이 동네 공원에서 이벤트 같은 걸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원에서 생일 파티도 하고 뭐 그러는 거지. 근데 여기서 어느 중국인 주민이 이벤트를 열었다. 그 친구도 아는 사람인데, 공원에는 큰 중국어 현수막을 펼쳐놓고, 확성기로 중국 노래까지 불렀단다. 그 조용한 주택 뿐인 동네에서 말이다. 이건 여기 미국 사람들도 안 하는 짓이다. 이게 주변 미국인 주민들에게 어떻게 보였겠나? 거기 모인 사람들은 뭐가 잘못된 건지도 전혀 몰랐다고 하더란다. 이게 진귀한 outlier일 수는 있다. 하지만 어디서 한국 사람들이 이랬다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어느 정도 중국인들과 한국인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보는게 맞는 것 같다.

뭐 하여간 이 한국인 아가씨는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을 소재로 노래를 만들었을 뿐이고, 그 게임을 브루노 마스도 재밌게 생각해서 참여했다. 만약 ‘채영이가 좋아하는 게임’이 아니라 ‘세계인이 마땅히 배워야 할 게임’이라는 스탠스였으면 브루노 마스가 참여하는 일도,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니네들이 나를 당연히 받아주고 인정해줘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이런 low-profile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밖의 사람들에게도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이 사태를 조명한 한국 뉴스 기사를 읽어봤는데 이렇게 써놨더군.

“만약 ‘아파트’라는 노래 제목을 듣고 ‘윤수일’이 떠오른다면 옛날 사람일지 모른다. 아니면 프로야구 팬이나 모 사립대학 출신일지도 모르고.”

시발 나는 다 해당되네. 뭐 근데 저런 거 없이도 윤수일의 아파트는 희대의 국민가요이고, 노래 자체의 힘이 있기 때문에 이 새 노래와는 상관 없이 생명력을 이어나갈 것이다. 오히려 새 아파트가 새로운 국민가요로 등극할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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