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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공부에 대한 내 생각 – 선행 학습 말고 예습을 해라

“나는 중3 수학을 벌써 다 뗐다. 너는 고1 수학을 다 뗐냐?”

내가 중 3 시절, 어느 중 2짜리한테 들은 소리다. 하도 충격적이어서 잊혀지지가 않는다. 솔직히 등수를 따지면 나하고 비교할 것도 없는 아이였고, 본인이 나보다 잘난 게 있다는 소리를 하고 싶어서 저런 소리를 한 것 같은데, 나는 저 소리를 듣고 내 생각보다 많이 모자란 녀석이라는 걸 알았다.

일단, 중 3 수학을 다 뗐다는 게 무슨 소릴까? 중 2가 중 3 수준의 수학을 다 안다면 물론 칭찬해줄만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저게 중 3 시험지를 가져다 주면 100점 받는다는 소릴까? 그럴 리는 없다. 중 2짜리 시험 성적도 그저 그런 주제에 말이야. 그냥 중 3짜리 수학 책을 놓고 과외 선생 붙여다가 진도만 나갔다는 뜻이지. 즉 책장을 끝까지 넘겨봤다는 소린데, 뭐 그러면서 이런 저런 공식 구경도 했겠지만, 아무 의미 없는 소리다.

건물을 짓는다고 생각해보자. 2층을 올리기 전에 1층을 단단히 짓는 게 중요하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런데 1층을 대충 얼기설기 지어도 2층을 올릴 수는 있다. 2층도 대충 짓고 3층을 올릴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지으면 10층 20층을 올릴 수는 없다. 모래성을 생각하면 된다. 일정 높이에 도달하고 나면 아무리 모래를 끼얹어도 그만큼 또 무너지기 때문에 더 높이 올라갈 수 없는 것이다. 1층을 단단히 짓고, 또 2층을 단단히 지어야 나중에 높은 층을 올릴 수 있다. 당장에야 남들 1층에 머물러 있는데 2층, 3층 빠르게 올리면 눈에 띄니까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 안다. 하지만 현명한 건축주는 그러지 않는다. 날림으로 빠르게 올려봐야 나중에 문제만 커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공부도 다르지 않다. 중 2면 중 2 수학을 완전히 이해해서 100점 받는 게 중요하지 집에 중학교 3학년 수학책이 꽂혀 있는지 어떤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중 3이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배우는 것을 완전히 익히려고 노력했지 고1 때 배우는 걸 먼저 구경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근데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내 앞에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게다. 이렇게 다 공부 못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한국의 중고등학교 공부의 목적이 나중에 대입 시험 결과를 잘 받아드는 데 있다고 한정 하더라도 중간에 누가 잠시 진도 빨리 뺀 적 있다고 가산점 주는 거 없다. 오히려 과정을 착실하게 밟아서 현재 커리큘럼에서 배운 것을 100%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근데 보면 꼭 공부 못 하는 애들이 진도 빨리 빼는 걸 좋아하더라고. 공부하고 거리가 멀었던 부모들도 그런 거 좋아하고.

그럼 예습이 소용이 없냐고 하는 사람이 꼭 있더라. 예습은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예습과 선행 학습은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예습은 다음에 배울 것을 미리 공부해두는 게 아니다. 그냥 다음에 나올 주제가 어떤 것인지 먼저 구경해보는 것에 가깝다. 마치 처음 가는 목적지에 운전하기 전에 네이게이션으로 어떤 길로 가는지 보고 가듯이 말이다. 이러면 실제 수업에서 준비 된 상태로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선행 학습은 말그대로 미리 공부를 다 해놓는 게 아닌가. 미리 공부를 다 해놓고 실제 수업 시간에는 자거나 멍 때리는 건데, 시간 관리 차원에서도 절대 효율적이지 않다. 그런데 학부모나 학생들 중에는 미리 다 이해를 해놓고 학교 수업에 나가야 불안하지 않다는 사람이 많은 거지 뭐겠냐. 근데 진짜 이해를 다 하긴 한 거 맞냐?

예습이 미리 공부 해놓는 게 아니면 뭐냐고 묻는 사람을 많이 겪어봐서 자세히 좀 써볼란다. 내가 생각하는 효율적인 예습은 먼저 내일 진도 나갈 부분 책을 펴고, 단원 제목을 보는 거다. 대단원 제목 읽고 그 안에 소단원들 제목을 읽은 다음에 상상을 해보는 거지. 무슨 내용이 다뤄질지 말이다. 시간 많이 안 걸리지만 머리를 써야 된다. 진짜 공부 잘 하고 싶으면 머리를 써야 된다니까. 그냥 기계적으로 읽는거면 별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근데 이렇게 내일 무슨 내용이 나올지 상상을 해보는 건 많은 도움이 된다. 이게 바로 내일 선생님이 채워줄 부분이니까. 대충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겠구나 하고 그 답에 대한 부분은 빈 공간으로 남겨놓은 채로 학교에 가는 거다. 무엇을 채울지 알고 수업에 들어가는 거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아직 한국에서 영어 이렇게 공부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내일 영어 시간에 배울 게 ‘미래 시제’라고 하자. 그럼 미래 시제라는 대단원 제목을 보고 영어를 쓰는 인간들은 앞으로 뭘 할지를 어떻게 얘기하는지 배우겠구나 뭐 이 정도 짐작을 할 수 있다. 소단원으로 가면 Will, Shall, Might 뭐 이런 것들이 나올텐데, 대충 이런 애들을 미래 시제에 쓰는구나.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는지 또 차이점은 뭔지 미리 공부해갈 필요는 없고 내일 선생님이 설명해주겠구나 그럼 잘 배워와야지. 제대로 안 알려주면 질문 하고. 뭐 이런 생각만 머리에 집어넣고 가는 거지. 이러면 수업 시간에 도대체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앉아 있는 것과는 효율에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사실 나도 고등학교 다닐 때는 학원에 나갔고, 학원 진도는 항상 더 빨랐다. 나도 선행학습을 하는 시스템에서 공부를 한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학원에서는 항상 멍 때렸다. 학원 선생님들도 아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원 왔는데 좀 쉬어야지. 그럼 학원 왜 나갔냐면, 친구들이 다 다녀서 그랬다. 부모님들도 내가 학원에 가야 안심을 하셨고. 오히려 내 최고 성적은 학원을 안 나갈 때 찍었는데, 이게 우연 같지 않다. 그래도 난 학원에 돌아갔다. 친구들 때문이었다. 마침 학원에서도, 내 성적을 알았는지 어쨌는지, 다시 돌아오라고 전화도 왔고.

다시 강조하자면, 고 2에 나오는 미적분은 미적분 수업을 받은 그날 밤에 자기 전까지만 완벽하게 이해하면 된다. 괜히 1년 씩 땡겨서 미리 공부하는 건 너무나도 미련한 짓이다. 학원이나 과외를 해도 현재 배우는 걸 확실하게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다면 OK. 그러나 1년 씩 진도를 빨리 빼면서 쓸데 없는 뿌듯함을 느끼기 위함이라면 그냥 안 하는 게 더 도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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