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생으로써 공부도 해봤고, 애들 가르쳐도 보면서 느낀 건데, 대충 애들 수준을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평소에 공부를 하는 사람과 시험 준비만 하는 새끼들이 되겠다. 시험 준비만 하는 애들은 지들 나름대로는 잘 하는 짓이라고 생각하더라. 다시 말하면 지들 나름대로 말이다.
예를 들면 평소에 공부를 하는 애들은 하루에 한 시간씩 한 달 동안 총 30 시간을 써서 시험에서 90점을 받는단 말이야. 근데 평소에 하나도 안 하다가 시험 전날에 5시간 벼락 치기로 시험에 나올만 한 것만 외워서 50점을 받고 나서 한다는 소리가 90점 받은 애는 시간당 3점을 얻었고 본인은 10점을 얻었으니 내가 더 똑똑한 놈이다. 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공부 조금만 더 하면 난리 난다. 뭐 진짜 이런 소리를 하더래니까. 어디서 구경한 게 아니라 나에게 와서 이런 소리를 하는 병신을 실제로 봤다. 솔직히 나는 그런 수준인 애들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나한테 굳이 와서 말을 건냈는데 무시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덕담을 건냈다.
“그래 훌륭하다. 다음 번엔 나만큼 공부하고 꼭 나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라.”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동안 영어 공부를 좀 하려고 했다. 근데 뭘 해야할지 좀 막막하더라고. 좀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TOEFL로 정했다. 그래서,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박정 어학원 토플반에 등록을 했다. 선생님이 시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리라는 굳은 결심을 갖고 학원에 나갔지. 근데, 여기서 가르치는 건 내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말그대로 시험 요령만 가르치더라고.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지문 하나가 나오면 나오는 문제 형식은 이러 이러하다. 보기에 이런 단어가 나오면 그건 답이 아니다. 어떤 보기가 나오면 둘 중에 하나를 찍어라. 이렇게 답을 찍는 요령만 알려주더라. 이런 것만 달달 외우게 가르치는데 뭐… 여간 당혹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1-2주 나가다가 그만뒀다.
만약 내가 내일 당장 토플 시험을 봐야 하는 입장이라면 이건 아주 소중한 정보겠지. 당장의 실력보다 조금 높은 점수를 받게 도와줄테니. 하지만 이건 실력을 늘이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이런 강의 10년을 들어봐야 영어가 느는 것은 커녕이고 시험 점수도 올라가지 않는다. 평소에 신문 기사를 외우든지 드라마 대사를 외우든지 해서 영어 실력 자체를 높혀 놓아야, 나중에 이런 강의를 듣든지 말든지 해서, 아주 고득점을 받는 게 가능하다.
평소에 공부하는 것은 장기적은 목표를 갖고 하는 거다. 당장 외우고 문제 푸는 것만 아니라 고민하고 이런 저런 시도도 해보고 하면서 소화를 시켜서 영양분으로 분해시킨 다음에 몸에 쌓이게 하는 공부다. 벼락치기 시험 준비라는 건 단기 목표에만 쓸 수 있는 어프로치다. 당장 시험에 나올 것만 좀 어찌 해서 낙제 간신히 면하고 다음날 다 까먹겠다는 거잖아. 시간을 얼마나 투자했든 쌓이는 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면 멍청한 짓이다. 평소에 공부를 하고 고득점을 받는 학생은 이걸 알고 있는데, 벼락치기만 했던 애들은 모르는 사실이지.
덧붙여, 평소에 공부를 하는 것은 길게 봤을 때 진정한 위력을 발휘한다. 지금 어떤 주제를 제대로 공부를 해 놓았다고 치자. 1년, 2년이 지나면 뭐 다 까먹는 건 매한가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다시 책 한 번 보잖아. 그럼 예전에 공부해놓은 것들이 금방 다 돌아온다. 근데 벼락치기로 시험 준비만 한 놈들은 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시작해야 하고 말이야. 그러니 학년이 올라가고 공부가 어려워질 수록 평소에 공부를 하던 애들과 아닌 애들은 차이가 벌어진다. 고등학교, 대학교, 혹은 그 이상으로 갈수록 아무리 좋은 머리로 벼락치기를 해서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걸 두고 ‘내공’의 차이가 있다 없다 하는 거지. 이것도 평소에 공부한 애들은 알고, 벼락치기만 한 애들은 모르는 사실이다.
또 문제 푸는 법만 공부한 애들한테 보이는 특징인데, 유형 조금만 바뀌면 못 푼다. 나는 이런 애들은 머리가 나빠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깊은 이해가 안 되어 있어서 이런 거더라고. 깊은 이해 없이 문제 푸는 법만 익히고 진도만 나가는 건 사상 누각이다. 높이 못 간단 말이지.
코 앞만 보고 걸어가면 제대로 못 간다. 시선을 멀리 두고 걸어야지. 단기 목표에 메몰되어 살면 인생 좆된다. 멀리 갈 수 있게 자신의 페이스를 조절하고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메꿔가야지. 인생에 short cut이 어디 있다고.
'Simple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카고 사람들에게는 국립 공원이나 다름 없는 Door County (0) | 2024.11.23 |
---|---|
내가 미국 시민이 되는구나 (0) | 2024.11.23 |
트럼프가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0) | 2024.11.18 |
나는 순수 예술하고 안 맞다. (2) | 2024.11.05 |
Last minute 초대에는 안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0) | 2024.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