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다 나오고 나서 이런 말 하면 뭐 니가 퍽이나 미리 알았겠다 뭐 이러는 게 정상이겠지만 나는 진짜 트럼프가 돌아올 것으로 예상했다. 상 하원 포함해서 싹쓰리로 공화당이 가져갈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지만 민주당에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 정도는 했다. 사실 내가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해서 내가 가진 견해라는 게 별 의미를 둘만한 것이 아님을 잘 안다. 그럼에도 내갸 느낌 점 좀 적어보려고 한다.
나만 이래 생각했던 것도 아니고 대충 주변 분위기가 그랬다. 내가 민주당 텃밭인 일리노이주에 살고 있지만, 일리노이주에서 민주당이 우세인 곳은 City of Chicago 정도이고, 거기 인구가 많은 탓에 민주당 텃밭으로 여겨지는 것이지 서버브로 나오면 전혀 얘기가 다르다. 그러니까 나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 생각은 잘 모르고, 그냥 서버브 사는 아재 생각은 이렇구나 뭐 이 정도로만 정리될 수 있겠다.
이렇게 된 데에는 크게, 사람들이 민주당의 기조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메시지를 트럼프는 준 반면, 해리스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에게도 이 점 때문에 트럼프가 더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전형적인 공돌이라 뜬구름 잡는 소리 별로 안 좋아한다. 공중에 붕 떠서는 어떤 좋은 말도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로 내려오면 진짜가 드러난다. 그렇다 이게 중요하다. 실질적인 문제, 그리고 그것에 대한 어프로치 말이다. 그럼 그 문제들이란 무엇이었냐 하면 인플레이션과 범죄, 그리고 불법이민이다.
실업률이 높으면 실업을 당한 사람들만 고통받지만 인플레이션은 모든 사람들이 고통 받는다고 하지. 돈 많으면 고통 안 받는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돈 많이 버는 사람도 인플레이션이 오면 하다못해 저축이라도 줄여야 된다. 올해 들어서 인플레이션의 추세가 좀 누그러졌다고 하는데, 그러면 뭐하냐. 지난 몇 년 동안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라버렸는걸. 이렇듯 지네한테 유리한 통계 한 두가지만 들고 나와서 전체 그림을 무시하는 건 어느 무능한 정부나 다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물론 인플레이션 문제가 이전 행정부 때부터 시작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정부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긴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진짜 이렇게 재정 지출을 무지막지하게 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말하는 정부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바나나 리퍼블릭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유능할 것으로 여겨지는 정부가 말이야. 인플레이션이 오면 식료품값만 오르는 게 아니라 자산 가격도 오른다. 이래서 working class를 엿먹이는 데에는 인플레이션만한 게 없다. 이러니 이 사람들이 떠나간 것이지. 바보도 아니고 말이야.
그리고 범죄, 이것 정말 시카고 사람들이라면 학을 떼는 거지. 최근 몇 년 동안 다운타운에서 폭동과 약탈만 여러번 있었고, 아무도 기소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뭐 어지간한 절도는 절도도 아니게 되었다. 이러니 예전에 안전하던 동네조차 위험해졌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사를 나온 사람들이라면 이구동성으로 다 하는 말이다. 이걸 용인하는 데에 무슨 대단한 철학과 계획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보통 사람들은 무슨 죄인가? 나야 가진 게 없으니 별 탈이 없지만 지인 중에는 금전적으로 큰 피해를 본 사람도 있다. 여기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범죄자들 편을 드는 정치인들에게, 시카고 시장 포함해서, 대단히 실망했다.
마지막으로 큰 문제가 불법 이민이 되겠다. 연방 정부에서 손을 놓고 있으니 국경에 맞닿아 있는 텍사스에는 큰 골칫거리였고 거기서 떨어져 있는 우리 일리노이에는 강 건너 불구경이었지. 역사적으로 멕시코와 미국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해온 바도 있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불법 이민이 폭증을 하면서 문제가 됐다. 뭐든 갑자기 바뀌면 종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문제가 터져나오는 법이다. 그럼 뭔가를 해야지. 근데 뭐 아무것도 안하니까 텍사스주에서 불법 이민자들을 버스에 태워다가 시카고에다 떨궈놓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노숙자들이 전례 없이 늘었다. 시카고 다운타운은 물론 서버브 공원에까지 출몰하시대. 또 그렇게 온 사람들이 기존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이다. 시카고 오지 말라고 버스를 막으니까 그 버스가 사람들을 서버브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도 한 번 왔다. 사람들에게는 시카고로 들어가는 기차표를 쥐어줬다는데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는 일이지.
당연히 불법 이민과 범죄는 시너지를 일으킨다. 우리 동네 근처 몰에서도 얼마 전에 불법 이민으로 온 사람이 절도 사건을 일으켰다가 잡히기도 했다. 한국에서 불체자가 수백만원씩 절도를 했다면 쫓겨나기라도 하는데 여긴 그냥 훈방조치 되더라. 애 키우는 입장에서 툭 하면 놀러 가는 몰에서 이런 일이 있다는 건 피부에 와 닿는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대해서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해리스는 이런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해결책은 커녕 현실인식 자체가 잘못되어 있거나 언급을 회피했다. 사실 이 대목에서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대신 트럼프는 정면으로 다뤘지. 내 생각에는 트럼프의 대책이라는 것도 다 맞지는 않는 것 같지만 그래도 뭘 하긴 하겠구나 하는 대목이 많았다.
다만 동유럽이나 아시아 출신 이민자들 중에는 트럼프의 외교 정책에 대해서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손을 떼려 한다. 그냥 러시아 마음대로 하라는 건데, 이게 중국에 어떤 시그널을 줄까? 당장 대만, 한국, 그리고 몰도바와 루마니아 같은 동유럽 국가들에게는 크게 걱정이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미국에 왔을 때 대통령은 오바마였지. 세월이 흐른만큼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과업도 달라졌고 말이야. 세상에 만능키는 없다. 르브론 제임스가 아무리 뛰어난 농구선수지만, 르브론 제임스만으로 구성된 팀은 우승할 수 없을 거다. 오바마도 물론 똑똑한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방식이 지금 통한다고도 볼 수 없다. 박정희, 그러니까 전기 박정희, 후기 말고, 대통령의 업적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그 사람이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을 맡으면 글쎄… 결과가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참 뭐랄까. 쿠바와 국교를 정상화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한 말이 있지. “내가 태어나기도 전 싸움에는 관심 없다.” 이렇듯 시대가 바뀌면 자신도 바뀌어야만 한다. 그냥 옛 방식만 고수하는 정치 집단을 보니 쇠락해가는 기업체를 보는 느낌이다.
여담으로 내가 혀를 찼던 장면이 하나 있다. 해리스가 폭스에 나가서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었다. 본인으로써는 상대편 진영의 한가운데 들어가 무쌍을 찍으며 본인의 캐파를 증명하고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기회였지. 마치 상대편의 JD Vance가 그러했듯 말이다. 예상대로 돌직구 질문이 들어왔는데,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뱅뱅 돌리더라. 나에게는 ‘약오르지? 니 생각대로 놀아나지는 않을테야. 나 똑똑하지?’ 하는 것처럼 보였다. TV 토론은 말이다. 진행자와 기싸움을 벌여서 이기는 것, 그러니까 진행자를 당혹스럽게 하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게 아니다. 같은 질문을 가진 유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찬스인데 그걸 저렇게 낭비하대. 하다못해 질문도 함정 같은 게 아니었다. 뭐 함정 질문도 준비가 되어 있었지 싶은데 거기까지 가지도 못 했지. 유권자들이 정말 궁금해 하는 걸 물어보는데도 저지랄을 하는 걸 보고 나는 탄식을 했다. 상황 파악이 그렇게 안되나. 아무래도 경선을 안 하다보니 저런 함량 미달의 후보가 나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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