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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정신과라는 데를 가 보다

전에 이런 불평을 한 적이 있다.

“우리 건강 보험 말인데, 정신과 진료를 커버해주고 있거든. 아 씨발 정신과 진료라니. 이런 거 누가 간다고. 쓰지도 않을 거 포함 시켜서 보험료만 올려 받는 거지 뭐겠어. 그냥 deductible이나 좀 내려줄 것이지.”

그런데 그 날이 왔네. 정신과라는 데를 내가 가게 됐다. 나는 나이가 40대 중반이다. 이 나이가 되면 평소 루틴에서 벗어나는 일은 웬만해선 하지 않는다. 나도 다르지 않다. 아주 예외적인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평소 생각도 안 하던 곳에서의 도움을 찾게 된 것이지.

사실 나 때문에 간 건 아니고, 우리 첫째 때문에 가게 되었다. 우리 첫째에게는 크게 두 가지의 문제가 있는데, 마누라와 내가 다 동의하는 문제 하나에, 나는 크게 동의하지 않지만 마누라가 크게 생각하는 문제 하나다. 나는 두 번째 문제도 뭐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마누라처럼 심각하게 생각은 안 한다. 진실은 그 둘 사이에 있겠지. 이 문제는 첫번째 문제에도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지만, 가장 큰 factor는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한다. 원인이 무엇이든 증세는 실재하기 때문에 뭔가는 해야 한다. 뭐 이래 결론을 내렸다.

한국에서야 좀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미국의 정신과는 체계가 잘 잡혀 있는 것 같다. 작성해야 하는 질문지의 양이 방대한 것과 더불어 의사가 한 시간이나 써가며 나와 그리고 아이와 대화를 하고 아이를 관찰하더라고. 그게 대충 보이는 걸 보는 게 아니라, 뭔가 목적지가 있고 거길 향해 최단 거리로 달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친척들의 맨탈 이슈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생각해보니 내 쪽 blood line에, 양과 질에서 모두, 참 뭐가 많았구나 싶었다. 내가 까먹고 가장 큰 사건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는데 다음 번에 꼭 알려줘야겠다. 이거 뭐… 굉장한 물건이 걸렸구나 이러겠지.

우리 아이… 나에게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인 것과는 별개로 참 키우기 어려운 애다. 얘가 나한테, 또 이렇게 미국에서 태어났으니 망정이지 어지간한 집에 태어났으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을 게야.

내가 마누라에게 그랬지.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나왔으면, 세상을 살 준비를 어느 정도 갖췄다고 봄이 타당하다. 폐로 호흡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음식을 위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잠을 잘 수 있어야 하고, 엄마 젓꼭지를 빨 수 있을 것이고, 아빠에게 안겨서 빠른 시간 내에 진정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는게 정상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뭔가가 빠진 거다. 뭔가 덜 갖춘 상태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애가 이럴 수는 없다. 몸에는 대충 문제가 없기 때문에 정신 쪽으로, 정서적으로 뭔가 못 갖춘 상태로 태어난 것이지. 아빠로써 이런 이야기는 정말 하기 쉽지 않은데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아니라면 이렇게 힘이 들 수가 없는 것이다.

얘도 나이가 들어가며 갓난 애기 때 속 썩이던 문제는 없어졌다. 하지만 얘를 예외적으로 힘든 아기로 만들었던 그 무언가는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그게 밤 중에 한 두시간 씩 우는 걸로 나타나지는 않을 뿐. 얘가 잠을 제대로 자게 되는 걸 보며 정말 크게 안도했지만, 또 다른 식으로 문제가 불거져 나올 것이다… 물론 그렇게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예상은 했고, 지금 아이가 보이는 문제가 그런 것이지 않을까 싶다.

전문가의 도움으로 그 무언가 근본적인 해결을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솔직히 크게 기대는 되지 않는다. 그냥 평생 관리하면서 살아야 할 당뇨병 같은 것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만 할 수 있더라도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 둘째는 이만큼 힘들게 하지는 않는데,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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