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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e

파생상품은 건드리지 마세요

지난 주말 애기 재우고 뉴스 하나가 눈에 띄였다. 한국의 어느 시중은행에서 DLS라는 파생상품을 팔았다가 사단이 났단다. 나는 저 파생상품도 몰랐고, 처음 읽는 내용인데도 익숙하더라. 왜냐하면 10년 전에 있었던 KIKO 사태의 재판이었으니까. 저런 파생상품은 개인에게 팔아서는 안되는데 뭐 그냥 팔았나보네. 진짜 나쁜 새끼들이다. 이왕 생각난 김에 왜 개인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이건 간에, 저런걸 사서는 안되는지 정리를 해볼란다. 가장 쉬운 이유부터 간다.

첫번째 이유는 상품이 비싸기 때문이다. 이건 내게 파생상품 가르쳐준 교수님도 이렇게 이야기하더라. 저런 복합 상품은, 아무리 파는 놈이 간단한 것처럼 얘기하더라도, 여러 금융상품을 조합한거다. 현물, 이자율 스왑, 이자율 풋, 콜, 등등. 이런 것들을 최소 세가지 이상 조합해서 만든 상품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상품 하나하나마다 마진이 붙는다. 이런걸 여러개 때려부어서 만든거니, 내재가치보다 훨씬 비싼 가격을 받고 팔 수 밖에 없다.

두번째 이유는 이익이나 손실을 얼마나 볼지 예측이 어렵다. 이익/손실의 확률분포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주식을 샀다고 치면, 주식이 많이 오르는 일은 드물고, 적게 오르는 일은 그보다 흔하다는 걸 우린 다 안다. 꼭 금융공학 학위가 없어도 우리는1년 후 이 주식이 어떻게 돼 있을지에 대한 확률 분포가 정규분포 곡선 비슷할거라는 걸 아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lognormal distribution이고 더 자세히 들어가면 그것도 아니지만, 대충 감은 잡을 수 있다. 게다가 주식은 오른만큼 이익이고 내린만큼 손해이니 직관적으로 이 투자로부터 뭘 기대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파생상품은? 여기서 한단계 더 가공이 되어야 한다. 기초자산의 움직임이 곧 내 이익/손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초자산마저 생소한 경우가 많다. 시나리오별 payoff 그래프를 내려놓고 봐도 이걸 확률과 연계해서 머릿속에 payoff의 확률분포를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나도 좀 복잡한 건 매트랩이라도 돌려봐야 좀 비슷하게나마 알 것 같다. 나같은 사람은 어찌 그려낼 수야 있다고 해도 은퇴를 앞둔 동네 아저씨에게서 기대할만한 것은 못된다. 실제로 은행 창구에 앉아있는 직원이나 고객이나 다 모르긴 마찬가지다.

세번째 이유는, 위험이 과소평가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식이나 이자율이 오르고 내리는 걸 예측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바닥에서 쓰는 모델들은 오르고 내리는 확률이 무작위 이벤트와 같다고 가정한다. 세상에서 가장 대표적인 무작위 이벤트가 바로 동전 던지기 아닌가. 동전 던지기는 이산분포를 가지고, 이걸 확장하면 정규분포가 된다. 이자율이나 주식이나 환율의 움직임이 정규분포를 따른다고 가정한다. 이건 합리적인 가정이고 어느정도 맞아들어가기도 한다. 즉, random number generator만 있으면 앞서 말한 profit/loss 분포곡선을 그릴 수 있다. 3 standard deviation만 해도 99.7%가 커버된다. 이걸 근거로 이자율이나 환율이 심하게 움직이는 일은 드물고, 그 문제의 파생상품이 안전하다고 약을 쳤을거다. 비전문가가 이정도까지 생각했으면 훌륭한거다.

문제는 그 드물어야 할 이벤트가 실제로는 많이 생기는거다. 환율, 이자율 얘네들은 다 평소에는 좀 얌전하게 움직이다가 뭔 일 있으면 미친듯이 널을 뛰는 애들이다. 정규분포를 비슷하게는 따라가는데, 희소한 이벤트들, 2 standard deviation 넘어가는 구간이 문제다. 정규분포에서는 10년에 한번도 안생길 일이 실제로는 네다섯번씩 생긴다. 이걸 전문 용어로는 fat-tail이라고 하고, 여길 연구하는 이론이 extreme value theory다. 내 생각에 파이낸스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접할 수가 없는 내용인 것 같다. 그런데 창구 직원이 이런거 들어본 적이나 있을까? 정리하자면, 지난 5년간 10% 이상 움직인 적이 없으니 앞으로 5년간 15% 움직이는 일이 없겠구나 하고 생각하기 쉽다. 특히 정규분포 곡선을 떠올려보면 더 그렇다. 허나 주식이나 환율, 이자율은 이 예상을 쉽게 깨버린다. 정규분포는 기초자산이 크게 움직일 위험을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예전에 KIKO 사태가 생겼을 때도, 그거 팔아먹은 놈들이 정규분포를 기초로 하는 Black’ model을 사용했다고 하더라. 뭐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일이다.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모델을 써서 고객들을 오도한거지. 본사의 퀀트 데스크에 앉아있는 사람은 알았겠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몰랐겠지. 어째 사단이 난 파생상품들이 다 기초자산이 평소보다 많이 움직여야 뭔 일이 생기는 것들이다. 앞서 설명한 문제적 상황, fat-tail에 들어가야 뭔 일이 생기는 상품들을 팔아먹은거다. 이게 내게는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알 리가 없는거, 그런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해야 바가지를 씌울 수 있지 않겠나.

그럼 이 파생상품들은 누가, 뭐에다 써야 하느냐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저런거 공부한 사람이지, 파는 사람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쓰는지는 잘 모른다. 그래도 답을 해보자면 난 먼저 payoff profile을 그려보라고 말해주겠다. 어느 상황에 얼마나 이득을 보고 손해를 보는지 그려보는거다. 주식이나 채권은 뭐 뻔하다. 파생상품은 복잡한 그래프가 나올거다. 그럼 그게 필요한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길 바란다. 그런 복잡한 payoff profile이 내 포트폴리오에 들어와야 할 이유가 있는가? 재대로 된 이유가 없다면 그 파생상품 필요 없다.

자산이 모두 달러로 묶여 있는데 달러 가치가 내릴까 걱정된다면, Currency Swap이라는 훌륭한 수단이 있다. 조금 더 위험을 감수하고 싶다면 환율에 대한 put/call이 있다. 자산이 모두 주식에 묶여 있는데 주가가 내릴게 걱정이라면 역시 스왑이나 풋 옵션을 포트폴리오에 더하면 된다. 채권 비중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고. 그런데 은퇴한 노인의 포트폴리오가 독일 국채 이자율과 무슨 상관이 있을 수 있는지 난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분이 30년짜리 독일 국채라도 들고 있나? 그런 분이 있다면 만기가 좀 더 짧은 국채로 갈아타시게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뭔 이유가 있어서 그걸 갖고 계셔야 하더라도, 스왑이나 옵션 대신 그 복잡한 payoff profile이 필요할 이유가 뭔가? 내가 장담하는데 100이면 100 그딴 이유 없다.

즉, 특수한 용도가 없다면 건드려서는 안되는게 얘네들이다. 파생상품 설계하는 일을 하는 친구도 그런 식으로 일한다. 특정한 요구를 해오는 고객이 있으면 거기에 맞게 설계를 해서 판매한다. 물론 고객은 개인이 아닌 회사들이다. 파생상품 그냥 사는거, 그거 그냥 도박하고 다를게 없다.

벌써 거의 10년이나 되어가는 일이다. 친한 친구 하나가 어쩌다가 주식 옵션을 사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 후로 옵션거래에 빠져 살더라. 정말 큰일날 일 아닌가. 난 그 친구를 설득해서 어떻게든 그만두게 만들고 싶었다. 실제 트레이더들은 옵션을 어떻게 거래하는지, 옵션 가격 결정 요소가 어떻게 되는지 등등. 그런데 내가 부족했는지, 그 친구를 말리는데 실패했다. 결국에는 뭐 얘기 안해도 뻔한 바로 그 결말을 맞았다. 그나마 직장 멀쩡하고 집이 부유한 편이니 다행이지. 이번 글은 혹시나 파생에 손대려는 사람을 말릴 수 있을만한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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