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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e

증권사나 은행에서 뭐 파는 애들 믿으면 좆되요

내친김에 예전에 좆될뻔 했던 일이나 하나 적어봐야겠다.

마누라와 결혼식을 올리기 몇달 전이었다. 이 예비신부는 결혼자금을 은행 예금에 모셔두고 있었지. 이 순진한 아가씨가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낸 오빠인지 망나니인지 하는 새끼가 마침 증권사에서 영업을 뛰고 있었는데 냄새를 맡은거다. 이 돈이 결혼 자금이라는 것과 결혼식이 몇 달 후라는 것, 절대 잃어서는 안되는 돈이라는 것까지 다 밝혔단다. 그랬더니 아주 안전한 상품이 있다면서 뭔 파생상품을 들라 했더라고. 얘길 들어보니 이거 안들면 바보라는 식으로까지 약을 팔았더라. 그렇게 좋은거면 본인이나 대출 풀로 땡겨다가 몰빵할 것이지… 아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어지간하면 그냥 들었을텐데, 하필이면 남자친구가 금융공학을 공부했네. 그래서 나한테 그 상품이 어떤거냐고 물어본거다.

먼저 상품 소개서 마빡에다 딱 박아놨대 ‘고위험’이라고 말이야. 씨발 그 브로커 새끼는 그런데도 안전한 상품이라고 우기더라. 아무리 직접 대면한건 내가 아니라 우리 와이프였지만, 약을 팔래도 사람 봐가면서 팔아야지 미국에서 금융공학 석사 받고 일하는 사람을 상대로 그지랄이대. 하긴 그정도로 뻔뻔해야 그짓도 해먹겠지.

자세히 내용을 뜯어보면, 주식 종목 두개를 기초로 한 상품이다. 자세히 기억은 안나는데, 그 둘 중의 하나인가 둘 다인가가 어느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좆되고 그 이벤트만 안생기면 약간의 수익을 보는 구조더라. 전형적인 barrier option (knock-in, knock-out) 섞어다 만든 파생상품이었다. 내가 지금은 좀 가물가물해도 barrier option 같은거 pricing 빡세게 공부했고, 많이 해봤다. 그 시절은 지금보다 덜 까먹었을 때라 뭐가 필요한지 머리에 바로 떠올랐다.

그 모기새끼를 쫓아낸 건 이 질문이다. 이 상품의 payoff profile이 어찌되는지 설명을 한 후에, 이게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있을 것 아니냐. 그냥 대충 느낌이 그렇다고 안전하니 안하니 말할 수는 없는거다. 여기서 무엇을 기대할지 분명히 존나 계산을 한 다음에 판단이 섰을건데 그 근거가 뭐냐? 니가 아니더라도 백오피스에서는 해봤을거 아니냐. 덧붙여 나는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데이터를 구한 후에 어떤 방법으로 주가 움직임에 대해 시나리오를 뽑아낼거다. 그로부터 이익이 날 확률은 얼마나 되고 손실이 날 확률은 또 얼마인지, 손해를 보면 얼마까지 보는지 계산을 해낼 수 있다. 뭐 이런 식으로 전달했던 것 같다.

내 설명이 다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브로커는 아무런 정량적인 근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내가 요구한 몇가지 키 인풋에 대해서는 그런거 없다고 대꾸해왔다. 사실 나도 말단 영업 나부랭이에게는 무리한 요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너는 모르겠지만 그걸 설계한 퀀트 데스크에서는 쓰는거란다. 내가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데, 밑천 털리는 상황이니 그런 소리라도 던져봐야지. 귀여운 놈. 그 새끼가 아는거라고는, 본인한테 떨어질 수당 밖에 없었겠지.

우리 마누라가 봤을 때도 그 근거라는 건 중요해 보였다. 이걸 어떻게 숫자로 계산하는지 조리있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과 그냥 우기기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 말을 믿겠는가? 게다가 상품 소개서에 이미 ‘고위험’이라고 적혀 있었고, 확률이야 뭐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상품 설계 자체가 손실이 날 수 있는 상황이 있게 되어 있다는 걸 아내에게 이해시켰다. 또한, 지금에야 세상에서 만만한 사람은 나밖에 없지만, 그 때는 결혼 전이라 마누라가 나를 능력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었다.

아내를 속이려 한 그 브로커가 괘씸했다. 아내는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며, 실제로는 아는 것도 많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그 사람이 보내준 요즘 자본시장에 대한 보고서를 보여줬다. 딱 보는 순간 바로 알았다. 이건 새벽에, 미국장 끝난 시간에, 리서치 애널들이 출근해서 만든 보고서란 것을. 리서치센터에서 준 리포트를 자기가 쓴 척 하면서 고객들에게, 지금의 아내에게, 약을 팔았다니 난 나지막히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어휴 개새끼.

어쩌면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사실일 수도 있다. 회사에서 인정받아 좋은 부서로 갔다고 하더라고. 그 능력이란게 사람들 구워삶아서 매출 올리는걸 말하는 거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고객들에게 하등 좋을 거 없다는게 문제지. 하기사 그게 속아넘어간 사람들 문제지 회사 문제겠는가.

그 일이 있은지 얼마 안가서 유로존의 재정위기가 크게 터졌다. 그 문제의 파생상품도 작살이 났다. 이 예비신부는 결혼자금을 구해낸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돈으로 인생이 어찌되진 않으니 큰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투자 잘못해서 돈 날릴 때의 스트레스는 가까운 사람이 돌아가셨을 때만큼 크다고 한다. 거기다가 그 망할 브로커가 수당 챙겼을 것까지 생각하면 뚜껑이 날아갔겠지. 하여간 그런 새끼들 함부로 믿지 않는게 내 지갑에도, 정신건강에도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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