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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e

쓰레기 모기지 풀에서 우량 채권 만들기

지난 2009년 금융위기가 어떻게 촉발되었나를 설명한 글이나 영상이 제법 있더라. 대충 쓰레기 모기지 풀을 가지고 채권을 만들었는데 거기 신용평가사들이 AAA 등급을 찍어줬고, 나중에 그 채권들이 다 골로 가면서 미국 경제도 같이 갔다 정도로 요약된다. 대충 다 맞는 말이다. 모기지 풀의 신용 등급이나 그걸로 만든 채권이나, 최소한 weighted average 신용등급은 같아야 한다. 그럼 어찌 채권이 더 좋은 신용 등급을 받을 수 있었나에 대해서는 제대로된 설명을 보지 못했다.

내가 몇 개 안봐서 그럴 수도 있는데, 그래도 제일 인기 있는 것들 중에서는 못봤으니까 몇 개 더 찾아봐도 별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뭐 전체적인 맥락만 알면 되지 자세히 저런 걸 알 필요도 없는게 보통 사람들의 입장이기도 하지. MBS가 한국에서는 그리 인기 있는 채권도 아니고 말이야. 그렇긴 해도 큰 맥락에서 정리를 해봤다.

1. water fall structure를 만든다.
모기지 풀에서 나온 현금 흐름을 여러개로 쪼갠다.  이걸 tranche라고 한다.  예를 들어서 이걸 둘로 쪼갰다고 치자.  Senior tranche와 junior tranche가 된다. 모기지 풀에 원리금이 들어오면 일단 senior tranche에 보내야 될 양만큼 보내고, 남은 것들을 junior tranche로 보낸다. 만약 prepayment가 들어오면 그건 또 junior tranche로 보내고 거기서 소화가 안될 만큼 prepayment의 양이 많다면 남은 걸 senior tranche로 보낸다. 만약 일부 모기지가 부도가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부도난 금액은 junior tranche에서 먼저 흡수한다.

좋은 건 senior tranche에 보내고, 안좋은 일은 junior tranche에서 먼저 흡수한다. 그렇기 때문에 senior tranche는 신용 등급이 높게 매겨지고 junior tranche는 낮은 등급을 받는다. 그래봤자 결국 둘을 합쳐보면 모기지 풀의 신용등급과 동일해야겠지만 말이다. 이 tranche들을 쪼개서 채권으로 파는데 senior tranche는 비싸게 팔고, junior tranche는 좀 싸게 판다. 그런데 전체 판매 가격이 모기지 풀의 가격보다 비싸면 그만큼 이윤을 남기는 거지. 여기서는 뭐 잘못된 게 없다.

2. 리스크 희석하기
강조하자면 이건 잘못된 방법이고 난 이것 때문에 MBS가 사단이 났다고 본다.

채권이라는 게 주식하고 달라서 부도만 안나면 현금 흐름이 동일하다. 나한테 돈을 빌려간 사람이 갑자기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나에게 정해진 원금과 이자를 넘어서는 돈을 주진 않으니까. 주사위를 한번 던져서 1이 나올 확률은 1/6이다. 이 이벤트만 피하면 채권이 안전하다고 치자. 그런데 1/6은 그래도 6번 중에 한번은 잘못된다는 뜻이다. 제법 무시 못할 확률인 게지. 그런데 주사위 100개를 던져서 동시에 1이 나올 확률은 굉장히 작다. 독립 변수를 많이 모으면 리스크기 희석이 되는거다.  Quantitative하게 설명을 하자면 volatility(표준편차)가 σ인 독립 변수가 있다면 이걸 100개 모은 다음 평균을 갖고 구한 표준편차는 σ /sqrt(100)이 된다.

즉 하나만 보면 volatility가 σ인데, 이걸 100개 모아서 한 풀에 집어넣고 다시 100개로 쪼개면 volatility가 σ /sqrt(100)으로 줄어든다. 풀의 크기가 커질수록 volatility 즉 리스크가 작아지는거다. 그래서 모기지보다 모기지 풀의 리스크가 작다고 보고 리스크가 작으니까 높은 신용 등급이 찍히는 거다.

그런데 여기서의 가정은 각 모기지를 독립변수로 취급한다. 문제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다. 시카고 사는 갑돌이네 집 값이 내렸다면, 아마 뉴욕 사는 개똥이네도 사정이 비슷할거다. 시카고의 경기가 침체돼서 실업률이 오른다면, 그래서 모기지를 제 때 못내는 사람이 많아졌다면, 뉴욕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확률이 높다. 즉 모기지 풀에 들어있는 모기지들 간에 correlation이 존재하는거다. 게다가 positive correlation이 말이다. 이러면 리스크가 생각처럼 희석되지 않는다. 재수 없으면 리스크를 증폭할 수도 있다.

신용평가사들의 모기지 리스크를 측정하는 모델에 이렇게 심각한 결함이 있었던 거다. 이게 좋은 등급을 찍어주기 위해서 일부러 그랬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이런 결함이 있었던 것이고, 이걸 캐치한 사람들이 쓰레기 모기지를 싸게 구해다가 섞어 놓고 높은 신용 등급을 받아서는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Big Short'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IB들이 당신네들 모델의 허점을 이용해서 돈을 벌고 있다구요."

다시 신용 평가 모델로 돌아와서, 유능한 엔지니어라면 저 모델이 대충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가정을 갖고 있는지 보면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는지 감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돈을 벌든지, 다가올 위험을 예측하든지 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저걸 봐도 아무런 눈치를 못챈다. 그게 유능한 엔지니어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다.

한국에서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였던 선배가 해준 말이 있다. 새로운 뭐가 나오면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보다 그 전에 있던 것, 그리고 그 새로운 게 나온 배경을 이해하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 그 새로운 기술에 어떤 장점이 있을 것이고,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인지 다 알 수 있단다. 그래서 그 문제를 안건드리도록 사용을 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오류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며칠씩 진도를 못나가는 일이 없다. 난 그런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문제를 피해가는 무슨 촉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사실 회사 다니고 하다보면 당장 눈 앞에 떨어진 일에 치여서 뭘 깊게 공부를 하기는 커녕 예전에 배운 걸 까먹기 쉽다. 나도 좀 많이 까먹었다. 그런데 기본이라도 안까먹고 있어야 유능한 엔지니어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당장 그 회사, 내 자리에서 필요한 잡일만 잘하는 사람으로 전락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들 한번씩 들여다보고, 새로운 것 나오면 또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은 유지해야 발전의 여지가 있는 거다.

그런데 나도 애 키우고 회사일 하다보니 그럴 여유가 없다. 저렇게 약간은 학문적인 내용을 계속 갈고 닦을 수 있는 자리가 흔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나도 회사 들어와서 내 손으로 수식을 전개해본 일이 몇 번 안된다. 나도 지금 회사 밖으로만 나가도 경쟁력이 후달리는 삼류 엔지니어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두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그토록 아카데믹 쪽으로 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뭐 근데 이젠 다 지난 일이고, 삼류 엔지니어 딱지나 안달게 노력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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