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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e

파생 상품 엮인 주가 조작 사건 터졌네

야.. 이거 진짜 딱 내가 좋아하는 주제다. 내가 경제사범이나 사기 사건 이야기를 좋아하고, 파생 상품은 완전 내 분야 아니냐. 뭐 딱 내 분야라고 하긴 뭣 한데 대충 그렇다 치자. 뭐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자동으로 쏟아지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좀 다르긴 한데, 이 블로그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쌉소리 하려고 만들어놓았으니까 내 맘대로 할란다.

(1) Total Return Swap

2008년 금융 위기의 핵심은 MBS, 이 사고의 핵심은 TRS(Total Return Swap). 과연 이 TRS란 무엇이냐. 내가 갖고 있는 주식/채권 A의 수익/손실하고 상대방이 갖고 있는 주식/채권 B의 수익/손실을 바꾸자는 계약이다. A에다가는 숏치고 B에다가는 롱 한거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실제로 주식 B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거기서 나는 수익이나 손실을 얻는 거라서 B에다 투자한 거나 마찬가지인 효과를 내는 거지. 엄청 흔한지는 모르겠는데, 시장에 멀쩡하게 있는 파생 상품이다.

그럼 이게 어떤 때 쓰라고 만들어놓은 거냐면, 내가 회사 A의 주식을 왕창 갖고 있다고 해보자. 내가 이걸 갖다 팔고 다른 거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데 이런 저런 이유로 올해 12월 말까지 이 주식을 팔 수가 없다. 뭐 상장 주식 보호 예수기간 뭐 이런 게 흔한 이유지. 근데 내가 그 때까지 기다리기 싫단 말이야. 그러면 IB, 여기선 IB 한국에선 증권사, 찾아가서 내가 갖고 있는 주식의 12월 말까지의 손실과 이익을 누가 대신 감당해줬으면 좋겠어요 하고 말을 하는거지. 그럼 A 주식의 이익이나 손실을 뭐랑 바꿀래? 이렇게 물어보는거고 사고 싶은 다른 주식이나 채권의 이익이나 손실, 아니면 코스피 인덱스, 은행 이자 정도하고 바꿀래요 뭐 이러는 거다. 그러다가 연말 되면 차액만큼 정산 하는 거지. A 주식 10원 오르고 받아야 될 채권 수익이 3원이면 7원 주는 거다. A 주식 10원 내리고 채권 수익이 3원이면 13원 받는거고.

근데 보통 사람들은 보호예수로 묶여 있는 주식 따위 없잖아. 내가 대주주라서 처분할 수 없는 주식 이런 것도 없고.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사실 접근할 일이 없는 파생이다. 파생 상품이 대충 다 그렇듯이 말이다. 그니까 보통 사람이 이걸 산다 그러면 그냥 뭐 투기 하는거지. 위에서 말한 A 주식 1주도 없는 새끼들이 A 주식에 대한 TRS를 하는 건데 이게 투기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냔 말이야. 구체적으로 무슨 생각으로 하는 거냐면 어느 주식 가격이 100원인데, 내 생각에 이게 연말까지 150원으로 오를 것 같단 말이야. 그럼 100원 들여서 저걸 사면 연말에 50원 이득을 얻는다. 그런데 100원으로 TRS 거래를 하게 되면 저런 계약 10개도 더 할 수 있다. 손실에 대비해서 증거금 묻어도 말이야. 그럼 현물 1주 대신 TRS 10개에다 투자하는 거고, 연말이 되면 50원 대신 500원의 수익을 얻게 된다.

투기꾼 입장에선 말이야 생각대로 주식이 오른다면 대박이 터지는데, 주가가 반대로 움직이면 진짜 쪽박을 차는 게 이 파생이다. 근데 주가가 사람 생각대로 움직이냔 말이야. 아무리 내가 기가 막힌 fundamental analysis를 해도 시장가와 그 주식의 내재가치는 동떨어져 있을 수 있다. 언젠가는 그 내재가치를 찾아간다 하더라도 그게 언제가 될지 알고 저렇게 기한까지 못 박는 거래를 하냔 말이야. 근데 이 파생은 언제까지 주가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거라는 확신 없이는 들어가기 힘든 상품이다. 그런데도 이 상품을 대량으로 거래했다면 그런 확신이 있었다는 뜻이고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지네들이 주가 조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2) Groundwork

이 주가 조작단의 그림은 이렇다. 거래량 적은 주식을 몇 개 골라서 주가를 끌어올린 다음 TRS로 수익을 극대화한다. 거래량 적은 주식을 고른 이유는 그래야 적은 자본으로 조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주가 조작이 되지 않으면 이 그림 자체가 구현되지 않기 때문에 자본이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게다가 엊그제 계좌 열고 10만원 넣어둔 개미에게는 파생 상품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돈 많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을 게다. 주가 조작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재야에서 암약하는 주가 조작 전문가들이 분명히 있다. 그들 나름의 네트웍도 있고 말이지. 뭐 하여간 그들과 발을 반 쯤 걸치고 있는 전주들이 이미 있었을테니까 투자자 모집이 크게 어렵지 않았을 것 같다.

근데 이미 돈이 많은 투자자들 입장에서 얘네들에게 돈을 맡길 이유가 뭐가 있을까? 이미 제도권 PB 센터 같은 데서 관리를 받고 있을텐데 말이야. 얘네들이 그 사람들을 설득할만한 뭔가가 있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제도권 자산 운용사보다 나은 무언가가 있다고 했을텐데 그게 과연 뭘까? 어떻게 해서 걔네들보다 나은 성과를 보장한다고 했을까? “주가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정도의 질문을 한 사람이 과연 없었을까? 당연히 있었겠지. 지네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판을 굴릴지, 그러니까 주가 조작을 할 거라고, 이미 투자자들에게 얘기를 했을 거다. 그렇지 않으면 왜 그 많은 돈을 제도권 PB가 아니라 쟤네들에게 맡기겠냐. 그들 중에 일부는 아마 이전에도 이런 주가 조작 전문가에게 돈을 맡겨본 경험이 있을 거라 추측한다. 투자자들 중에 정말 얘네들이 구린 짓을 하는지 모르고 맡긴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알았을 것이다. 물론 살짝 조작하는 건 위법이 아니라는 둥 뭐 그런 개소리를 믿었을 수는 있겠지. 걸렸을 때 뭐라고 변명할지에 대한 메뉴얼도 있을 것 같다.

뭐 투자자들한테는 주식 시장의 비밀을 알았다 뭐 이런 소리로 설득했다 그런다. 일단 이 말을 난 믿지 않고 지네들이 무슨 불패 공식이라도 만들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라 뭐 이런 소리 같은데 헛소리다. 그리고 혹시나 진짜 비밀이 있고, 또 그걸 알고 있어서 초월적인 수익을 내는 재야 고수가 있을 수 있지 않냐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는데, 그런 분들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보길 바란다.

주식 시장의 비밀 하나가 밝혀진 적이 있지. 주식 현물과 이자율, 옵션과의 관계를 밝혀서 필승 공식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이것보다 싸면 사고, 비싸면 팔고를 하면 절대 잃을 수가 없는 공식 말이다. 이건 Black-Scholes option pricing model로 알려져 있고, 이걸 발견한 사람들은 노벨상 받았다. 이 사람들 중 하나는 나중에 다른 천재들 모아다가 또다른 불패 공식 만들어서 펀드를 굴리다가 그 기본 가정 중에 하나가 무너지는 사건이 나서, 그러니까 불패 공식이 알고보니 불패 공식이 아니었단 소리, 세계구급 위기를 불러오기도 했다. 이건 LTCM 사태라고 한다. 지금도 그런 모델을 만들어서 주식 시장에서 활약하는 펀드가 있다. 대표적으로는 Renaissance Technology이고 천재급 수학 물리학 박사들이 그런 걸 만들어낸단다. 지네들이 이 급이 된다는 말인가? 이게 어디 근본도 없는 사기꾼들 몇 명 모여서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만만한 게 아니란 말이다. 아니 알았다 치자. 알고 보니 초천재들이었다고 치잔 말이다. 그럼 그걸 제도권에서 사용하면 지하 작전세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명예와 부를 얻을 수 있는데 뭘 하고 있냔 말이다. 지네가 안 비밀이라는 게 고작 안 걸리고 주가 조작하는 방법이란 뜻이다.

주가가 올라가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대주주의 물량이 풀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래서 사전에 대주주하고 어느 정도 교감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영화 ‘작전’을 봐도 그런 장면이 있다. 대주주를 미리 포섭해뒀는데, 이놈의 대주주가 물량을 던지고 나가는 바람에 작전이 터졌다. 충분히 그럴 수 있잖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회사를 하나 갖고 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 이 기회에 회사를 팔고, 그러니까 주식을 팔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이 뻔한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약을 치지 않았을까?

그러면 금감원은 이 사태를 왜 두고 보고만 있었을까 싶은데, 다 사정이 있겠지. 얘네들이 뭐 마음에 안 드는 거 보인다고 막 쳐들어가서 뒤지고 할 수 없을거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 어느 개잡주를 보면서 이거 작전주구나 하고 알았던 적이 있다. 그런데 뭐 그 중에는 나중에 잡혀 들어간 놈들도 있고 아무 일 없이 지나간 놈들도 있다. 금감원에서 한딱가리 할 수 있는 조건이, 그러니까 가이드라인이 있을거다. 법으로 정해논 것도 있겠고. 거기 안 걸리면 분명히 주가조작 같아도 움직일 수가 없는 거다. 너무 소극적으로 일하는 것 아니냐 싶을 수도 있는데, 걔네들 안그래도 일 많다. 뭐 하여간 어찌하면 안걸릴 수 있는지 알아야 하는 것도 주가 조작 세력의 기본 소양이지. 얘네들 이 쪽 전문가라니까. 게다가 법도 제법 까다롭지 싶다. 음지에서 선거 자금 관리하는 정치인들 아마 지금도 있지 싶은데, 이런 자금을 저런 음지의 전문가들을 통해서 굴리기도 할 것 같다. 그러신 분들 입장에서는 법이 느슨해서 금감원이 막 뒤질 수 있기를 바라지 않을 것 아닌가.

나는 증권사 쪽도 의심스럽다. 일단 여기서 TRS라는 파생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짰는데, 이 개잡주에다가 TRS를 걸어주는 상품이 있어야 거래를 하는 거잖아. ‘Big Short’에도 그런 장면이 있다. 모지기 풀에 대한 보험(CDS)을 사려고 하는데 그런 상품 자체가 없는 거다. 그래서 골드만 삭스에 가서 그거 만들어달라고 한다. 거절한 데도 많았지 싶은데 골드만 삭스는 그거 만들어준다. 마이클 버리는 모기지 부도나는 쪽에다가 배팅하고, AIG 같은 애들은 모기지 부도 안 나는 데에다 배팅하고 골드만 삭스는 그 거래를 중개해준다. 덕분에 나중에 AIG 같은 애들이 터져나가고 나서 골드만 삭스는 국회에 불려가 들들 볶인다. 근데 골드만 삭스가 뭔 죄냐. 그냥 서로 반대쪽에 배팅하고 싶은 사람들 중개해줬을 뿐인데.

아무리 뜨거운 피가 넘치는 한국인들이라고 해도 이런 개잡주에 이런 파생이 이미 만들어져 거래가 되고 있었으리라고는 상상이 안된다. 이 작전 세력도 증권사를 찾아가 저런 거 만들어달라고 했을거다. 지네들이 필요한 파생상품이 무슨 삼성전자 콜 옵션 같은 게 아니고 아무도 모르는 개잡주에 보통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파생이잖아. 이런 걸 만들어달라고 한다고? 그리고 거기다가 대량으로 배팅까지 한다라. 물론 저런 상품을 만드는 것도, 거래를 중개하는 것도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상한 일을 벌이겠구나 하고 짐작은 했을 거다. 그런데 이 파생에서 counterparty로 들어온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지 궁금하네. 증권사는 중개만 할 뿐이잖아. 직접 저 주식을 사서 파생을 만들었을 것 같진 않은데. 이런 개잡주를 어찌 알고 들어와서 숏을 치는지.

(3) Execution but busted

뭐 하여간 대주주 꼬셔놓고, 증권사에서도 밑작업 했고, 지네들이 열심히 조작하면서 주가가 올라간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네들이 물량을 내놨을 때 받아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지네들끼리 주고 받기만 하면 올라간 주가도 사이버 머니에 불과하다. TRS로 수익을 낸다 해도 이것도 현물과 어떻게든 연관이 되어 있어서 다 털고 나갈 수가 없다. 하지만, 이미 증권사는 알고 있기도 하니까, 점점 소문이 나며 개미들이 참전하기 시작한다. 거래량이 불어나 세력이 털고 나갈 물량을 받아낼 수 있다는 판단이 되면 그 때 털고 나가는 거지.

누구나 계획은 있지. 쳐맞기 전엔 말이야. 이 아름다운 시나리오가 마무리되기 전에 누군가 판을 깨고 나갔네. 대주주인지 세력인지 모르겠는데, 아직 시장에서 곱게 소화될 수 없는 물량을 풀어서 주가 조작 세력을 털어먹은 거다. 그러면서 주가가 내려찍히니깐, 세력의 계좌에서 반대매매가 일어나며 주가를 또 끌어내린다. TRS까지 오지게 끌어모았기 때문에 거기서도 또 청산이 일어나며 주가가 내려앉는다. 원래 세상 일이란 게 이렇다. 자본금이 많으면 주가 조작에는 유리한데 털고 나가기가 어렵지.

물량을 턴 사람이 “나는 몰랐소.” 하는 것도 믿기 어렵고, 이 판 설계해서 굴리던 새끼가 “저 놈이 범인이다.” 하는 것도 어이 없다. 이래서 개잡주는 건드리면 안 된다. 이 와중에 TRS 반대쪽으로 배팅해서 돈 번 용자들이 승자인데,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 궁금하다. 혹시 먼저 판 깬 세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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