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imple Life

논문 대필

학부 시절에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으면 교수 정해서 대학원 진학을 한다. 이게 일반적인 석사과정이다. 그런데 이런 석사과정 말고 좀 이상한 석사과정이 있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저녁 시간에 일하는 아저씨들이 학교 와서 수업 듣고 가는 프로그램이 따로 있었다. 그것도 대학원이긴 대학원인데 그냥이 아니라 XX대학원 이런 식으로 앞에 뭐가 더 붙는다. 아마 지금도 있을거고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았을거다.


저런 대학원은 등록금도 비싸고 이리저리 돈도 많이 든다더라. 그런데 회사에서 학위 있으면 승진 되고 거기 따라서 연봉이 올라가기 때문에 비싼 등록금을 내도 남는 장사라 그거 하려는 사람이 많다. 학교에서도 그런 수요를 보고 공급을 하는거고.


아예 리그가 다르기 때문에 일반대학원 학생들이 그 아저씨들을 볼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결국 보긴 본다. 왜냐하면 그 아저씨들의 논문을, 아닌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반대학원의 석박사과정 풀타임 학생들이 써주기 때문이다. 어차피 공부는 아예 관심도 없고, 지네들끼리 네트웍 다지고 학위만 따는게 목표인 사람들인데 논문에 뭐 그리 신경을 쓰겠나. 내가 학교에 있던 시절 일이니 좀 오래됐지만 아마 지금도 그럴 거다.


구체적으로 쓰기는 조심스럽지만, 나도 학교에 계속 있었다면 한두개 정도 대필하고 졸업했을 것이다. 어차피 학문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니 별로 신경도 안쓴다. 그 논문을 갖고 어디 SCI에 낼 것도 아니고. 내 주변에서는 대필하는 사람도 그걸 어디서 베끼는 것은 못봤고, 그냥 프로젝트 보고서를 좀 가공해서 쓴다는 것 같았다. 보통 석사학위 논문도 다 프로젝트 한거 갖고 내는거니까 비슷해 보여도 질은 훨씬 떨어지는거지.


내가 있던 학교에서는 저 프로그램에 박사과정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박사는 그냥 일반 대학원의 파트타임 박사로 하더라. 물론 돈으로 다 하는거지 공부도 안하고. 그렇게 박사 과정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지위가 있어서 프로젝트를 물어다 주는 조건으로 받아주는 것 같더라.


회사에 다니는 아저씨들은 공대에 저런 프로그램을 다녀서 학위를 돈으로 받는다. 그런데 그냥 돈 많고 공부 못하는데 타이틀은 필요한 사람이 학벌 세탁용으로 학위를 따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런 수요를 겨냥해서 공대 밖에 다른 단과대에도 저런 식의 프로그램이 있다. 역시 앞에 몇글자 더 붙어서 XX대학원 이런 식이다. 안그런 곳도 있긴 한데 대부분 이렇다고 보면 된다. 이번 총선 때 후보자들 이력을 보니 이런 식의 경력이 제법 눈에 띄더라.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교수가 되려고 하진 않는다. 다시 말해 학계로 가려는 사람이 이렇게 학위를 받는 건 본 적이 없다. 카이스트를 가려는 학생이 공고에 진학하지 않는 것하고 좀 비슷하달까. 그래서 문대성의 논문대필의혹 사건은 내게도 좀 충격이었다. 어떻게 학계에 가려는 사람이 저러는거지? 뭐 처음부터 목표는 학계가 아니라 정계였던 것 같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범위를 벗어난 사건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기본에서 벗어나면 문제가 생긴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다. 논문은 자기가 연구한 거 쓰는거다. 학교를 다니고 논문을 내는데 연구하는데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이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다. 단순히 대필이나 표절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기본을 제대로 세우지 않는 것이 내가 보기엔 가장 심각한 문제인 것 같다. 오히려 표절 등등은 거기에 따라오는 증상일 뿐이다. 그런데 기본을 벗어난 요상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다들 짜고 치는 고스톱판인데 뭘 새삼스레 그런 얘길 하냐 하는 분위기인가.


문득 저 대학원에서 시험보고 1등했다고 자랑하던 병신이 생각난다. 정말 병신이었지, 어쩔 수 없이 맞장구 쳐주면서 직장인의 비애를 느꼈다면 너무 과장일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