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할아버지의 모습은 그냥 별 말씀이 없으신 시골 노인이셨다. 워낙 어릴 때라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도 잘 몰랐다. 그냥 천방지축이었을 손자를 가만히 보기만 하시는 분이셨다.
그래서 딱히 할아버지와의 추억이라고 할만한 건 없다. 할아버지와 살았고, 나중에 따로 살게 된 이후에도 자주 할아버지댁에 갔지만 할아버지는 그냥 날 보기만 하셨다. 그리고 난 그냥 맘대로 놀았다. 날 혼내는 건 항상 다른 사람의 몫이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아프셨다. 아니 아프다는 말만 들었다. 췌장암에 여러 합병증이 와서 병원에 입원하혔다. 내가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뵈었을 땐, 병색이 완연했고 눈도 감고 계셨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조차 몰랐다.
그러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많이 슬프지도 않았다. 그냥 매일 할아버지가 계시던 그 자리에 더이상 안계시겠구나 하는 느낌 정도였다. 학교에서는 외조부라는 이유로 결석도 허락해주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친가와 외가 사이에 차별이 있었다. 그렇게 난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저녁, 난 할머니의 눈물을 처음으로 봤다.
그땐 몰랐다. 할아버지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할아버지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 때 난 내가 무엇이 되느냐는 내게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냥 열심히 노력하고 내게 능력만 충분하면 그 결과는 당연히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맹렬히 달렸다. 가끔 뛰어난 성취를 하기도 하고 좌절도 하고 그럴때면 자학도 했다. 그러면서 문득 "난 도대체 뭐가 되고 싶은거지?"하는 의문이 들었다. 곰곰히 생각해봤다.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는 걸까? 그냥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건가? 교수가 되고 싶나? 도대체 난 뭐가 되고 싶어하는 걸까?
그때 떠오른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그리고 그 후로도 계속 그랬다. 어떤 문제에 부닥치고 사람들과 갈등을 겪을 때에도.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될까라고 생각해볼 때 내가 생각하는 건 어김없이 할아버지였다.
어릴 때부터 시니컬한 성격을 갖고 있었던 탓에 위인전기를 읽어도 으례 '과장 + 구라'라고 생각하고 무시하던 나였다. 아마 어느 정도는 사실일게다. 그래서 난 롤 모델도 스스로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치기어린 시절 스스로의 한계를 합리화하던 것을 채찍질할 때에도 기껏 내가 아는 천재 누구 정도를 떠올릴 뿐이었다. 그런데 세상을 어느 정도 알고나서부터는 늘 항상 할아버지였다.
난 비록 어렸지만, 할아버지가 훌륭하신 분이란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제서야 난 할아버지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그런 유산을 남기신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께 난 말썽쟁이 손자였을 뿐이었는데,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에는 그저 말썽이나 피웠지 정말 난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다.
다음에 한국에 가면 꼭 다시 할아버지 산소에 가보고 싶다. 늦게나마 말씀드리고 싶다. 그 천방지축 손자가 이렇게 컸고, 할아버지를 세상에서 제일 존경한다고. 할아버지는 그렇게 기억되어 있고 앞으로도 계속 전해질거라고. 할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들에 내가 표현할 수 없을만큼 감사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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