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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단일화가 제대로 안된 걸 보니 이번 대선은 박근혜가 이기겠구나

왜 이런 식으로 됐을까. 참 안타깝다.

물론 여러가지 사정이 있을 것이고 밝혀지지 않은 뒷이야기도 많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드러난 몇몇 조각만으로 전체 그림을 상상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도 한번 해 보련다. 나름대로는 아주 틀린 것도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협상을 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좁혀가는 과정이다. 결국 안철수와 문재인 측이 각각의 안을 2개씩 들고 오는 것까지 좁혀졌다. 그러고나서 진전이 잘 안되니까 문화계 원로들이 각자의 안을 하나씩 섞은 것을 절충안으로 내놨다. 문재인 측은 그 절충안을 받아들였는데 이상한 건 안철수 쪽 반응이다.

그 중재안이 안철수 쪽에 유리해 보였음에도 거부하고 자신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안을 들고와서 최후통첩 식으로 던졌다. 이건 정상적인 협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냥 판을 깨자는 뜻이다. 그리고 협상은 파토가 났다.


그럼 안철수 쪽에서는 왜 이렇게 했을까? 세가지 경우가 있을 것 같다.

1. 균형감각을 잃었다.
애초에 문재인 측이 단일화를 더 원했다. 문재인은 정치인이고 안철수는 한발만 담근 상태다보니 정치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열망 자체가 문재인이 강할 수 밖에 없다. 거래를 할 때 상대방이 얼마나 강하게 원하는지를 알면, 그만큼 많이 얻어낼 수 있다. 그동안 보인 행태가 딱 그랬다. 안철수 측에서 선문답을 슬그머니 꺼내 놓으면, 문재인 측에서는, 안철수가 요구하는게 뭔지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답을 내놓으려고 뺑이를 쳤다. 협상 과정에서 안철수는 문재인을 많이 움직이게 했지만, 안철수 쪽에서 뭘 해준 건 없다. 이게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거니까.

인간 관계에서도 점점 더 많은 요구를 들어주다보면 요구 수준이 무리해져서 결국 말도 안되는 레벨로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그냥 그렇게 가다가 균형감각을 상실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2. 애초에 단일화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단일화를 할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앞으로 안볼 놈에게나 할 수 있는 무례한 협상 태도'를 취한 게 아닐까. 그런데 이건 또 말이 안되는 게, 안철수는 결국 사퇴까지 한 사람이다. 본인이 사퇴를 해서라도 단일화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사람에게 단일화를 할 생각이 없었다고 하는 건 모순이다.

3. 안철수와 협상팀의 동상이몽이었다.
내 생각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안철수의 생각과 안철수의 팀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생각이 달랐을 경우다. 안철수가 정치를 하던 사람이 아니다보니 팀을 급조했다. 사람들은 기존 정치인들이다. 안철수처럼 과감히 자기 것을 내놓는 것은 기존 정치인들의 문법에는 맞지 않는다. 모든걸 걸고 단일화를 이뤄내겠다는 안철수와는 달리 협상팀은 그냥 상대로부터 뭔가를 많이 얻어내는 데에만 급급한 정치인들이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는 당장 뭘 많이 얻어내는 사람이 능력있는 사람 대접 받지 않냐. 그래서 문재인 측에서 안철수가 협상팀과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는게 아닌지 하는 말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사실 꽤 신빙성이 있다. 마지막에 사퇴를 할 때도 안철수 캠프 사람들과 의논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나.

내가 협상하는 당사자였다면 안철수의 진심을 의심했을 것 같다. 아니 이런 식으로 협상이 되었다면 당연히 진심을 의심해야 한다. 협상 파트너의 진심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안철수와 문재인이 직접 담판을 해도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수 없다. 협상이란 것이 기본적으로 상대가 하는 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진전이 되니까.

결국 아름다운 단일화는 물건너가고 그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많이 받았다.

안철수가 사퇴한지 여러날이 지났다. 안철수가 만약 문재인을 파트너로써 생각하고 돕고 싶다면 나서도 진작 나섰을 것이다. 그리고 안철수를 주의 깊게 보던 사람들도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거다. 문재인은 거의 모든 미디어와 선관위의 지원을 받다시피하는 후보와 싸워야 한다. 둘이 힘을 합쳐도 될까 말까한 상황에 안철수가 사실상 비토를 놨다. 아마 이번 선거는 문재인이 이기기 정말 어려워진 것 같다.

안철수 입장에서는 협상팀의 실기로, 원인이 커뮤니케이션 미스이던 전략적 판단 미스이건 간에, 상황이 어려워졌음을 알았을 것이다. 아름다운 단일화는 이미 어려워졌고, 저런 제안을 상대방이 받아들인다고 해서 단일화에서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이겨봐야 제대로 된 지원을 얻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이건 지금 안철수 쪽에서 문재인과 거리를 두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예기치 않게 상황이 어글리하게 되자 가장 스마트한 판단은 그냥 발을 빼는 게 아니었을까. 그러면서 한동안 정치에서 거리를 두고 문재인측이 대선 패배 후에 지리멸렬하게 되면 그때 자신의 세력을 모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 보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문재인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그때도 안철수는 정치적인 입지를 챙길 수 있을 것이고 말이야.

다 되어가는 밥에 재 뿌리는 단일화 협상을 보니, 아무리 리더가 훌륭해도 그의 비전을 공유하며 스마트하게 움직이는 수족이 없으면 안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냥 혼자 판타지 소설 하나 써봤다. 대선 후에 내가 지금 쓴 포스트를 보고 쪽팔려할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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