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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립다

요즘 CFA 때문에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역시 이건 3주만에 벼락 때려서 하는 게 아니야. 정말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난 인생이 고달플 때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갔다. 즐겨 찾던 식당들이 있는데 진짜 거기서 뭘 좀 먹고 나면 힘이 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여기선 그걸 할 수가 없다. 제대로 된 한식당도 없고, 이 근처에서 좀 유명한 식당이라면 루 미첼스랑 블랙버드가 있는데, 루 미첼스는 전형적인 미국의 아침식사다. 한국 놈이 그걸 먹고 힘을 내니 어쩌니 하는게 어불성설이지. 그리고 블랙버드는 시카고의 대표적인 고급식당 중 하나다. 한끼 제대로 먹으면 1인당 50불은 든다. 회사 다닐 땐 솔직히 얼마 안되는 돈이었는데, 유학생 처지에 언감생심이지. 그거 먹는다고 힘이 나지도 않겠지만.

한국에 있을 때 즐겨 찾던 집이 너무 생각나서 글로 옮겨본다. 먼저 가장 오랜 단골집인 "스텔라 플레이스". 압구정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정확히는 신사동인데 거길 보통 압구정이라 하긴 하지. 원래 "지아지아"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장사가 잘 됐는지 원래 있던 곳은 "스텔라 플레이스"로 이름을 바꾸고, 조금 떨어진 곳에 "지아 파스타"라고 하나 생겼다. 분점은 아니고 그냥 가게가 쪼개진거지. 난 이 집의 크림소스 계열 스파게티를 좋아한다.

흔해 내가 좋아하는 집은 "조용하고 음식 맛있는 집"이라고 하는데, 이게 사실 말이 안되는 것이 음식이 맛있으면 붐비기 마련이니까 저런 집은 좀 있다가 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스텔라 플레이스"는 갈 때마다 조용하다. 원래 좀 조용한 집이긴 한데, 장사가 썩 잘 돼 보이진 않는다. 나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설픈 맛집소개 등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 건지. 적어도 내겐 최고 맛있는 스파게티다. 나 말고도 몇명 더 그렇게 생각하더라.

또 우리집에서 가까운 퓨전 한식 "랑". 여기 음식이 난 참 괜찮더라. 양도 적당하고 음식도 깔끔해서 집안에 무슨 회식할 일이 있으면 무조건 여기로 갔다. 외국에서 친구가 오면 꼭 여길 데려가리라. 한식이라고는 불고기, 비빔밥 밖에 모르던데. 찾기도 쉽고 집에서도 가깝고 점심은 성능대비 많이 싸고 해서 주로 점심을 애용했던 기억이 나네. 그런데 한번은 여기 와인을 들고 가서 먹을랬더니 코키지를 3만원인가를 받아서 그냥 안먹었던 적이 있다.

글구 다음으로는 "박대감네", "새벽집". 청담동에는 좋은 고깃집이 많지만, 이 두 집이 집에서 가까워서 자주 갔다. 그런데 고기가 너무 비싸니까 고기를 먹은 것은 아니고, 주로 갈비탕을 애용했지. 요즘 들어서, 요즘이래봐야 1년 전 이야기지만, 박대감네 갈비탕이 값만 오르고 예전만 못하다고는 하는데, 나도 동의하는 바이고, 솔직히 그정도 하는 집도 별로 없다. 그리고 새벽집이 갈비탕은 최고인데 이게 한정판매라서 먹기 쉽지 않다. 하지만 새벽집에서 따로국밥이라던가 이런 메뉴들이 전반적으로 다 맛있었다.

일요일날 늦잠자고 일어났는데 이상하게도 힘이 없고 그냥 밥맛도 없고 이럴 때가 있지. 그럼 씻지도 않고 이 집으로 직행해서 갈비탕 한그릇 비우면 딱 좋다.

또 뭐가 있을까. 뭐 소소한 집들이 많지만 딱 몇개만 더 생각해보자. 마포에 있는 갈매기 골목도 좋다. "마포 갈매기", "부산 갈매기" 나머지 하나는 기억이 안나네. 여기 갈매기살이 참 맛있다. 대두가 마포 살다보니 여기도 자주 갔었는데 참 그 맛이 그립네. 이동네는 고기가 싸긴 한데, 갈매기살을 먹을 방법도 없고, 한인마트 삼겹살의 질을 고려해보면 있어도 별로 먹고 싶지 않다. 아 정말 먹고 싶다.

또 마포에 "대나무집"이 있다. 마포가 좀 오래된 동네이고 예전엔 도심 대접을 받던 동네다보니 음식 제대로 나오는 집이 많았다. 대충 아무 가게나 가도 맛있다. 그 중에 보신탕으로는 "대나무집"과 "대교집"이 유명하다. 그런데 대나무집이 조금 더 입맛에 맞았거나 아니면 더 쌌던가 했을거야. 그래서 대나무집을 주로 다니게 됐던 것 같네. 지난번 한국 들어갔을 때도 여기 갔었다. 대교집은 노무현 전대통령의 단골집이었다는 설은 있는데 확인은 못해봤다.

마포에서 또 유명한 집이 "마포나루"가 있다. 모든 음식이 다 맛있는데다가 대두집에서 가까워서 자주 갔었지. 닭도리탕에 막걸리 한잔 하면 딱 좋은데.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네 그런데 내가 여기서 만들어먹을 수도 없고...

그리고 "진동횟집" 여길 빼먹을 수는 없지. 경남 진동에서 매일 생선을 공수해오는 집인데, 경상도식 회를 내놓는다. 경상도식 미역국도 나오고. 정말 깔끔하고 음식 제대로 나오는 집이지. 신촌 바닥의 2만 5천원짜리 광어하고 비교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특히나 내가 부산출신이다보니 경상도식 음식이 나오는 게 좋더라.

장어가 생각나면 봉은사 옆의 "송강"에 가면 되고. 추어탕이 생각나면 서울대입구역 근처의 남원추어탕. 또 뭐가 있었지. 아 정말 먹고 싶은게 너무 많다. 그런데 앞으로 최소 1년 간은 먹을 수가 없겠지. 정말 시카고에 제대로 된 갈비탕 집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유학생활이 조금은 덜 힘들텐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출세작 "댄스 댄스 댄스"를 보면 주인공 직업이 맛집소개하는 기자다. 자기 직업을 놓고 하는 말이 "제대로 된 음식점을 찾아다 망치는 일"이라고 했다. 잡지에 소개가 되면 사람들이 몰려가고 그럼 수요 공급 곡선에 따라서 질이 낮아진다는 거지. 그것 말고도 붐비게 되면 음식이 나오는 시간을 짧게 하거나 확장을 하거나 하면 예전처럼 음식을 만들 수 없어서 맛이 간다는 말인데 맞는 말이다. 대학 때 자주 가던 홍대 앞의 "아지오"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조그만 가게일 때에는 정말 괜찮았다. 아는 홍대생이 거기도 유명해지면서 맛이 좀 갔다고 하던데 결정타는 가게를 크게 확장해서 옮겼을 때다. 한번인가 두번인가 가보고는 안갔다. 도저히 같은 음식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어서.

그걸 읽던 시절이야 뭔가 했지만, 인터넷이란 게 널리 보급되면서 정말 그런 일이 많이 생기더라. 부디 저 집들은 내가 한국 갈 때까지 초보적인 맛 전문가들한테서 난도질당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줬으면 좋겠다. 한결 같다는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알지만, 좀 그래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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