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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유학생에게 음식이란

LA나 뉴욕에는 제대로 된 한국식당이 많다는데 시카고는 그렇지 않다. 다운타운에는 딱 하나가 있을 뿐이다. 뭐든 그렇지만 경쟁이 없다보니 질이 형편없다. 저기 북쪽으로 가면 한국식당 괜찮은 곳이 좀 있다는 풍문을 듣긴 했는데, 내가 그리 한가하지도 않고 또 다른 데서 듣기에는 그것조차 별로란다. 결국 한국음식을 먹고 싶으면 해먹어야 된다.

사먹는 음식만 갖고는 유학생활을 버텨나갈 수가 없다. 일단 돈이 너무 비싸다. 팁을 줘야되다보니 한끼 사먹으면 그냥 10불은 나간다. 3끼 먹으면 30불인데 매일 이짓을 하기엔 부담스런 액수다. 그럼 팁을 주지 않아도 되는 싼 식당을 가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식당은 맥도널드, 서브웨이 수준이다. 아마 미국 사람들도 그런 것만 먹으면서 살라면 못살지 않을까. 한국으로 치자면 김밥천국이나 동네분식 떡볶이만 먹으면서 사는 거랑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한국음식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려면 비싸게 사먹거나 만들어 먹어야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미국 음식보다는 한국 음식이 익숙하고 따라서 조리법을 익히기도 쉽다. 그러다보니 만들어 먹는 건 대부분 한국음식이 되더라.

나도 시간이 나면 미국 음식 중에 가정식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좀 배워보고 싶다. 그러면 냉장고 비어도 미국음식 만들어 먹으면서 장볼 때까지 버틸 수 있을거니까.

난 혼자 밥 만들어 먹는 것에도 익숙해져서 가끔 가다가 요리를 해서 친구들 불러서 먹기도 한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일본 식당에서는 꽤 괜찮은 음식을 먹을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즐겨 먹던 음식들이 그립다. 휴일에 힘 없을 때마다 챙겨 먹던 집 근처 갈비탕, 설렁탕 집부터 가끔 가던 횟집, 고깃집 다 그립다. 심지어는 한국에서 내가 자주 가던 스파게티집마저 그립다.

내 입맛이 그리 까다로운 편은 아닌 것 같다. 아무거나 주면 잘 먹는다. 하지만 내가 차이에 대해서는 좀 민감한 것 같다. 음식이 조금 더 짜졌다거나 안느껴지던 맛이 느껴진다거나 하면 쉽게 알아채는 편이다. 조미료가 들어간건지 청량고추가 들어간건지 생강이 더 들어간건지 이런 건 모른다. 내가 직접 그 음식을 많이 해서 먹어본 게 아니라면 그런건 내가 알 수가 없지. 하지만 뭔가가 조금 다르면 금방 안다. 음식도 강한 맛 하나가 모든 걸 다 덮어버리는 것보다는 밸런스를 잘 이뤄서 재료 하나 하나의 차이를 다 느낄 수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는 미식가 소리도 들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맛은 예민하게 느끼니까

그런데 여기 오니 미식이니 뭐니 없다. 그냥 생존하기 위해서 음식을 만들고 먹을 뿐. 그래도 전두환과 관계가 있다는 한인마트에서 파는 삼겹살은 너무 맛이 없어서 절대 먹지 않는다. 여기서 구할 수 있는 재료가 한계가 있기도 하고 내가 레시피를 잘 모르기도 하고 해서 맛있는 음식을 도무지 먹을 수가 없다. 우습게 들릴지 몰라도 정말 힘든 점이다. 한국에서는 힘없고 그럴 때 즐겨가던 집에서 갈비탕 한그릇 먹고 나면 힘이 났는데 이건 뭐... 힘없고 그럴 때 헬스장 가서 땀흘리는 것 말고는 딱히 하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한국의 그 단골집들이 너무 그립다. 사람들이 먹는 데 관심이 많아져서 몇년 전부터 맛집을 소개하는 사이트나 블로그 같은 것들이 창궐하고 있다. 그런데 난 거기 나온 정보는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솔직히 잘난척하면서 써놓은 글은 많아도 과연 얘가 뭘 알고 썼나 싶을 때가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기 글 올리는 애들 취향이 나랑 다른 것 같다. 그냥 한가지 맛만 강렬하게 해서 기억에 남으면 그걸로 OK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난 양념을 그렇게 강하게 할 것 같으면 좋은 재료를 쓰나 안좋은 재료를 쓰나 차이도 없고 아예 재료 맛을 덮어버리니 좋은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내 취향이 majority하고는 좀 다른 모양이다. 그런 소개해놓은 블로그 따라가서 성공해본 기억은 거의 없다시피하고, 내가 아주 좋아하는 식당은 오히려 취급조차 안되는 일이 부지기수더라.

아 정말 한국의 맛있는 음식이 너무 그립다. 그리고 여기 내가 사진은 처음 올려보는데, 생일날 혼자서 끓여먹었던 미역국이다. 상차림이 심하게 단촐하네. 보통 반찬 3개는 놓고 먹는데. 그래도 이 동네는 미역국 파는 곳도 없다보니 이것조차 참으로 귀한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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