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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따뜻한 말 한마디

미국에 나와 보면 알겠지만, 영어를 원래 잘하던 사람이 더 영어가 잘 는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옆에 미국 사람이 있어도 쭈뼛쭈뼛하다가 말도 제대로 못하고 고개만 쳐박고 있게 된다. 일단 말이 안되니 친해질 수가 없다. 그런데 이미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그래도 좀 편하게 미국 사람과 친구가 되고 그러다보면 영어가 더 잘 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에 오기 전에 토플이라도 점수를 만들어보고 오라는 것이다.


유학을 나오기 전에 내가 부딪힐 현실에 대해서는 친구들로부터 충분히 들어서 나도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늦은 나이에 영어가 느는 것이 쉽진 않았다. 그래도 졸업을 할 즈음엔 주제가 뭔지 알면 대충은 알아듣고 천천히 말하면 내가 할 말도 어느 정도 더듬거리면서 broken English라도 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멜 정도는 말이 되게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생활에 충분하냐고? 그럴 리가 있나.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직장을 잡아서 일하게 됐는데 영어를 너무 못해서 정말 스트레스였다. 회의 때 내 말을 제대로 표현을 못해서 온 회의실이 혼란과 침묵에 빠졌을 때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었다. 가능하면 사람들과 어울리고 또 말도 하고 해야 조금씩이라도 늘테니 말이다.


사람들과 밖에서 어울리고 싶어도 그 이너서클에 들어가는게 쉽지 않다. 특히나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으로써는 더 그렇다. 그런 면에서 난 참 운이 좋았다. 옆자리에서 같이 일하는 애가 날 데리고 나가줬다.


매주 수요일마다 맥주를 마시러 갔는데 거기서 영어 잘 못하는 동양인은 나 하나였다. 나머지는 모두 native speaker들이었고 대부분 나처럼 영어 못하는 외국인과 친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당연히 못알아듣는다고 생각하고는 그냥 자기네끼리 이야기하는데 나는 같이 앉아 있기만 했다. 뭔가 말을 하려고 해도 워낙 빨리 대화를 하다보니 내가 말할 생각을 하는 틈에 벌써 그 타이밍이 넘어가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거의 하나도 못알아들었다.


그러다 그 중에 스페인에서 살았던 동료 한명이 내게 말해줬다. 자기가 처음 스페인에 갔을 때는 말을 하나도 못했단다. 그냥 사람들과 어울려 술집에 갔지만, understood nothing이었단다. 하지만 계속 공부하고 어울리다보니 점점 알아듣는 말이 많아졌고 그렇게 스페인어를 할 줄 알게 되었단다. 하나도 못알아듣는 그 기분이 어떤지 잘 알지만, 너무 자신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계속 노력하라고 말해줬다.


그날 내게 해준 이야기가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내가 늦은 나이에 미국 와서 영화 스크립트나 외우고 있는데, 이런 내가 영어를 잘 못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 그 자리에 있던 native speaker들도 그건 다 알고 있다. 그러니 내가 영어 못알아듣고 못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냥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노력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배워가는거다.


그 이후로 그 술자리에 꾸준히 나갔고, 이젠 거의 다 알아듣는다. 그리고 조금씩 끼여들 때도 많아졌다. 영어를 어떻게 하면 잘하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왕도가 어디 있겠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조금씩이나마 잘 하게 되는게 세상의 이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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