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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인간관계에 있어서 공감이란

처음으로 실연을 당했을 때, 정말 말도 못하게 가슴이 아팠다. 극복하는데도 참 오래 걸렸다. 그 전에는 이별 노래들이 다 구라인 줄 알았는데. 특히 날 힘들게 했던 것은 내가 그녀에게 더이상 아무 의미도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인생 경험이 좀 더 쌓여보니 나 자신이나 내가 겪은 일이 어떤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사람 가슴을 후벼파는 아주 보편적인 일이라는 걸 알았다. 실연도 그 중 한가지였던 거고.

 

물론 나하고 별 상관도 없는 사람이 내게 공감해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 하지만 마땅히 그래야 할 사람이 내게 아무런 공감을 하지 않을 때의 느낌이란, 꼭 내가 부정당하는 것 같다.

 

요 며칠 아주 극적인 케이스 하나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가끔 나한테 하소연을 털어놓는 K가 큰 곤란에 빠졌다. 똥줄이 타는 그와는 달리 그의 가족들은 쿨하기 그지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더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그런데 그 분들이 그러면 안되는게 애초에 K의 돈을 가족들이 몽창 들고 있으면서 돌려주지 않아서 생긴 문제이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사정이 생겨서 남의 돈 빨리 못주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가족끼리라도 그런 일이 있을 법 하고 그 기간이 몇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안타까워하기는 커녕 아예 문제를 거론조차 못하게 하고 억지로 그 이야기를 꺼내면 화를 낸다는 소릴를 듣고 적잖이 놀랐다. 그런 식으로 나오면 안될 분들이 그러고 있는게 아닌가.

 

다행히 어찌 돈을 돌려받고 문제를 땜빵하긴 했단다. 뭐 당연히, 그 과정에서 K도 만만한 성격은 아니라 가족들과 아주 크게 다퉜다. 그 사람 말로는 드디어 가족 관계가 끝장이 났단다. 어떻게 한시름 놨다고 좋아하고 있는 그놈에게 난 아이구 이놈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넌 돈보다 소중한 걸 잃은거라고 책망했다. 그런데 K는 지나치게 의연해서 가족이랑 화해를 해보라는 내 말이 씨도 안맥혔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K에게 이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가족들이 그를 쭉 하찮게 대해왔단다. 어릴 때는 집안 식구들에게 인정을 받아보려 노력했겠지만 어느 순간 포기했겠지. 형제들 간에 차별까지 느껴가며 말이다. 상식 선에서 이유가 떠오르진 않지만 뭐 그게 꼭 이유가 필요한가? 그냥 K가 집에서 구박 받는 존재로 자리매김이 된거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욘 없을 것 같다. 때론 단순한게 진리에 가깝다. 수년 전 금융위기를 설명해보려 온갖 사람들이 별 소리를 다 해봤지만Robert J. Schiller의 가설이 짱먹었지 않았나. 그냥 사람들이 단체로 미쳤었다는 소린데 말이야.

 

줄이자면, 가족들이 K를 아무것도 아닌 취급을 해오다보니 K에게도 가족이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렸다. 그에게 가족은 소중한 그 무엇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소중한 걸 잃었다고 말해봐야 안통했던 것이고.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이고 그 사람이 내게 어떤 무언가라는 사실이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인 것 같다. 상호간에 작은 의미조차 없다면 그것은 건강한 인간관계라 할 수 없다. 이런건 superficial한 사이일 뿐이다. 심지어 강한 연결고리인 혈연도 이 사실 앞에서는 한없이 가벼울 뿐인 것 같다.

 

이걸 보며 나도 내 자신을 돌아봤다. 나는 얼마나 많은 친구들의 성공에 같이 기뻐하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했나. 나는 얼마나 이 인간관계의 기본에 충실했는지 말이다. 그냥 먹고 살기 바쁘다고 무관심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봤다. 그들에게 피상적으로 친구인 척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오늘은 오랜만에 친구들에게 전화 한통씩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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