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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A bad case of 육아

이 글을 쓸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안좋은 일 곱씹는다는게 뭐 썩 유쾌하진 않으니. 허나 이렇게 써두면 나도 곱씹어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겠다 싶어 정리해봤다.

이 XX친구를 몇글자로 요약해보면 대충 이렇다. 학업성적은 우수하나 사회성이 좀 없다. 전체적으로 보면 성실하고, 능력 있고, 착하고 그렇다. 이만하면 멀쩡한 것 이상이다. 허나 내가 bad case에 집어넣은 건 온 성장기에 걸쳐 학대를 당했기 때문이다. 사고를 치고 다니는 애도 아닌데 학대를 했다면 bad 맞지 뭐.

그는 본인이 왜 허구헌날 구박을 당하는지 이해해보려 노력한 것 같다. 설득력 있는 가설을 갖고 있었다. 그 가설을 여기다 소개해본다. 편의상 그 친구를 갑돌이라고 하자.

갑돌이의 부모님은 옛날부터 사이가 아주 안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는 다정할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그는 해당되지 않았다. 먼저 아버지는, 대충 들어보면 ‘올해의 아버지’ 상을 받을만한 분은 못된다. 게다가 일 때문에 집을 자주 비우셨다. 이게 중요한데, 갑돌이에 대한 정보는 주로 어머니를 통해서 들으셨다. 그럼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겠지. 불행히도 어머니께 좀 문제가 있다. 이유가 뭔지는 몰라도, 본인은 스스로 아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셨다. 그런데 현실은 그냥 보통 가정의 주부. 이 커다란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대단한 사람이라면 뭔가 대단한 일을 했었어야 옳다. 지속적으로 대단함에 미치지 못했다면 보통 두가지 반응을 보인다. 합리적인 반응은 본인이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거다. 그래도 자신이 대단해지고 싶으면 현실을 먼저 인정하고 여기서 발전하기 위해서 뭘 할지를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릇이 돼야지 뭐. 그럴 능력도 없는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간다. 주변을 비난한다. 자신이 엄청나게 훌륭한데 지금 내가 이 모습인 것은 환경 탓이다. 주변 사람들 탓이다. 아주머니는 두번째 길을 택했다. 심리학 용어로 이걸 ‘투사’라고 한다.

가정주부도 훌륭한 삶일 수 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본인은, 스스로 선택했음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아이와 남편을 비난했다. 나는 엄청나게 능력 있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인데, 남편 때문에 이렇게 산다. 자식이 못나서 화를 자주 낸다 이런 식이다. 주로 아버지보다는 작고 약한 갑돌이를 괴롭히면서 거대한 자아의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메우려 한다.

꼬꼬마 미취학 아동 혹은 초글링이 잘못을 저질러봐야 뭘 하겠나. 애가 정해진 시간에 밥을 다 못먹었다 정도는 그 광활한 간극을 설명하는데 성에 차지 않는다. 더 거대한 죄악이 필요하다. 그냥 그 아이의 존재 그 자체가 문제라고 해야 어째 설명이 좀 되는 것 같다. 그러니 야단을 쳐도 아이의 존재 자체에 대한 비하, 비난이 주를 이룬다. 갑돌이는 애초에 열등하게 태어났으며, 빌어먹게 살도록 운명지어졌다. 그런 미물이 자기 옆에서 숨쉬고 있는거 자체가 문제란다.

근데 진짜 문제는 어머니의 내면에 있다. 항상 자격지심에 짓눌려 있으니, 불씨가 당겨질 때마다 화가 폭발한다. 불행히도 이게 아이에게 향한다. 갑돌이는 영문도 모른채 모든 문제의 원흉, 악마가 되어 형벌을 받는다. 악귀를 물리쳐 세상을 정화해야 한다는 사명감이라도 있는걸까? 최선을 다해서 애를 때려잡는다. 동네사람들이 말리러 달려와주면 다행이고 안그런 날도 있고…

아버지가 옆에서 이 꼴을 말려줄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그에게 도움이 되기 힘든 상태였다. 앞서서 말한대로 모범 아버지하고는 좀 거리가 있는 분인데 내외간의 사이도 안좋고, 집도 자주 비우시고. 그나마 어머니의 입을 통해 애를 파악하니 애를 곱게 보기 어려웠을게다. 이래서 뭐 어머니를 말려준 적도 있고, 같이 두들긴 적도 있단다. 갑돌이에게 붙은 죄목은 ‘너 때문에 집안이 이렇게 시끄럽다’.

이게 일상이었던 갑돌이는 집안의 왕따, 불가촉천민이 되었다. 부모, 시블링으로부터 말이다. 그는 이 상황을 벗어나보려, 부모의 애정과 존중을 얻어보려 노력했겠지만, 원인이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부터는 체념한다. 괴롭히는 쪽도 무감감해지기는 마찬가지다. 어머니로부터 온갖 멸시 섞인 화풀이를 당하는게 일상이다. 시블링은 어머니 옆에 앉아서 같이 조롱한다. 갑돌이의 물건도 맘대로 건드린다. 죄책감 같은건 느끼지 않는다. 불가촉천민 좀 괴롭히는게 뭐 어때서?

이 집단 괴롭힘이 끝나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갑돌이를 제외한 가족 구성원들이 단체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뭐 이게... 세상 일이란 게 이렇게 아름답지 않잖아.
2. 갑돌이가 야구방망이라도 들고 쫓아가 되갚아준다: 의미 있는 반항을 하긴 했지만, 그러고 우리집으로 도망와서 며칠 있었다, 곤죽이 되도록 두들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3. 갑돌이가 그냥 그 가족에서 떨어져 나온다: 결과적으로 이리 됐다.

음… 정말 그럴듯한 분석이다. 뭐 분석이야 그렇다 치고 이런 환경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줬고,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뭐 그는 현대사회의 모범 시민의 한 사람으로 아주 잘 살고 있다. 지금 모습에서 학대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본인은 부정하지만, 이 성장과정은 분명히 그의 영혼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

가족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일부러 그러는게 아니라, 가족이 그의 머릿속에 없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조차 그에게 부모나 형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가족인데, 몇년씩 연락도 안한다. 그쪽에서 연락이 오는 것도 아니니 뭐… 그에게만 뭐랄 것도 아니지만서도. 이게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내 짐작에는 그의 성격에도 좀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너는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라고 들으며 자랐을거다. 나도 내가 리처드 파인만처럼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걔는, as long as he can remember, “너는 떡잎부터 글러먹다.”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너무 어릴 때였으니 그 말이 사실인줄 알았단다. 그가 본인의 미래에 대해서 어떤 기대를 가질 수 있었을까? 이게 과연 그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줬을까? 뭐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 이렇게 하진 않을거다.

언젠가 질문을 하나 해봤다. 그의 가족들은 어찌 지내고 있을까? 모든 문제의 원흉이라는 그가 사라졌으니 그 가족은 ‘live happily ever after’여야 정상일 것 같은데. 뭐… 그도 잘 모르지만, 대충 둘로 쪼개져서 서로 말도 안하고 사는 모양이더라. 나도 그리 짐작은 했다. 애초에 그 친구가 모든 문제의 원흉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인들의 문제는 그대로고 화풀이 대상만 없어졌을 뿐인데 뭐 좋은 일이 있겠나.

항상 나와 내 아내의 정신 건강을 챙기고, 우리끼리 사이 좋게 지내야겠다. 문제가 있으면 항상 정면으로 바라봐야한다. 내 아이에게는 아빠가 항상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걸 알도록 하겠다. 어떻게 해야 우리 가족이 ‘live happily ever after’ 할 수 있을지 난 모른다. 허나 이렇게 하면 거기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겠지. 그나저나 마누라가 한국 드라마를 좀 끊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지 않은데… 박근혜 때문인지 자꾸 신경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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