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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Chicago Public Library

한국에 살면서 공공 도서관에 가본 적이 있던가? 어디 보자. 국회 도서관 몇번 갔고. 학교 다닐 때는 학교 도서관을 이용했지. 그 외의 도서관에는 가본 적이 없다. 가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내 퇴근시간이 도서관 문 닫는 시간을 아득하게 넘어갔으니 말이지. 더군다나 회사 다닐 때는 내가 사는 곳 근처에 공공 도서관도 없었다.

국회도서관은 좀 특수하니까, 내가 한국의 공공 도서관이 어떻게 돼 있는지는 모르겠다. 따라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Chicago Public Library는 정말 훌륭하다. 유학 시절에도 이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고, 아이가 생긴 지금도 매주 간다.

먼저 좋은 자료를 많이 갖고 있다. 동네의 조그만 도서관조차 충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대사회에서 교양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굳이 돈을 들여서 뭘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냥 공공 도서관에 있는 장서들, DVD, CD만 빌려써도 충분할 것 같다. 다운타운에 있는 Harold Washington Library는 심지어 한국어 책도 있다. 한국어 책을 시카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것 같다.

두번째 이유는 여유 있는 시설이 좋아서다. 세미나룸도 무료로 빌릴 수 있는데, 항상 여유가 있다. 책상도 많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랩탑을 갖고 도서관에 가서 DVD를 시청하기도 했고, 책도 읽고, CFA 공부도 했다. 언제나 자리가 있기 때문에 책상을 좀 비워도 상관 없다. 한국의 국회 도서관처럼, 열람실에 들어가기까지 대단한 여정을 거쳐야 하는게 아니다. 그냥 스타벅스 들어가듯 쉽게 들어가서 공부 좀 하다가 나와서 밥사먹을 수 있다.

다음 이유는, 특히 요즘 내게 중요한 건데, 아이들을 위한 시설, 장서가 많다. 우리 동네에 있는 도서관은 못해도 1/3 이상의 면적이 아이들을 위한 곳이다. 아예 놀이방 같은 장소도 있는데 거긴 장난감도 많다. 아마도 그 도서관에서 가장 붐비는 곳일게다. 게다가 아이들용 책은 얼마나 많은지, 굳이 내가 많은 책을 사서 집에 재워놓을 필요를 못느낀다. 미국의 공공시설들은 아이를 위한 곳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 도서관도 역시 그렇다. 거기다 시카고 지역의 박물관, 미술관, 동물원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패스를 빌려준다.



이 모든게 무료다. 빌린 책을 제 때 반납하지 못하면 연체료가 좀 있긴 하지만, 비싸진 않다. 비록 내가 세금을 엄청나게 내고 있긴 하지만, 덕분에 이런 시설들이 굴러가는거라 생각하면 좀 위안이 된다.

유일한 단점은, 시설이 안락하고 무료이다보니, 노숙자들이 꼭 몇명 들어와 쉬고 있다는 점이다. 그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는 것도 아니라 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허나 도서관에서 노숙자들을 마주칠 것을 딱히 예상했던 것도 아니어서 좀 놀라긴 했다. 좀 익숙하지도 않았고 말이지. 난 이제 아무렇지도 않지만, 이걸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이해한다.

난 미국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이 마음에 든다. 본인만 부지런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현대 사회의 교양 있는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학교만 열심히 다녀서는 안된다. 많은 책도 읽어야 하고, 영화도 봐야 하고, 음악도 들어야 한다. 이동네의 교양필수인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기 위해서 $100짜리 킨들을 산 후 $30 주고 전자책을 사서 편하게 읽는 방법도 있다. 그럴 여유가 없어도 우라노스와 크로노스 이야기를 접할 방법이 있다. 조금만 몸을 움직여 공공도서관에 가면 다 있다. 고전부터 신간, 책은 물론 DVD, CD까지 갖추고 있다. 뭐 아주 전문적이고, 최신인 걸 떠먹여주지는 않지만, 도서관만 이용해도 충분한 수준까지 갈 수 있다.

미국의 교육 시스템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만약 집안이 가난해서 대학엘 못간다 치자. 그러면 커뮤니티 칼리지에 가면 된다. 가난하다면 학비를 면제시켜주거나 저렴하게 융자를 해준다. 생활비는 내가 알아서 마련해야겠지만,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다. 여기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생일 때 파트타임으로 일을 해봤다. 집이 꽤나 부유한데도 그랬더라고. 그러니 학교 다니면서 식당에서 알바하는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렇게 해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학점을 따고 나면, 멀쩡한 대학으로 편입이 가능하다.

대학에서 실용적인 전공을 고르면, 대충 취직이 다 된다. 5만불씩 받으며 사회생활 시작할 수 있다. 학자금 융자를 다 갚기 전까지는 허리띠를 졸라매야겠지만, 중산층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다만, 본인의 꿈을 쫓겠다며 비실용적인 전공을 고르면 좀 얘기가 다르긴 하다. 하지만, 난 ‘꿈’을 따라가는 건 사치의 영역이라고 본다. 미국의 시스템의 사치를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세금을 열심히 낼, 중산층으로 올라가겠다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엄청 똑똑하지 않아도, 본인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이게 가능하다.

하겠다는 사람에게는 확실히 길을 열어주는 것, 정말 바람직한 아이디어인 것 같다. 이도저도 안하려는 애는 뭐, 모르겠다. 내 생각엔 해줘봤자 안되는거 같은데. 그런 사람들도 다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지. 허나 아무것도 안하려는 애들보다 하겠다는 애들 먼저 도와주는게 순서인 것 같다. 미국이란 나라의 시스템은 여기 충실한거고. 난 이점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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