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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

한국 의술이 최고?

사람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각양각색이다. 미국 병원 갔다가 망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고쳐온 사람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내 경험을 말하자면 난 후자에 가깝다. 미국 병원에서의 결과가 훨씬 좋았다. 그래서 나는 미국 의료 서비스의 질이 한국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허나 개인적인 경험들이라는 게 큰 그림을 보는 것을 방해하는 아웃라이어일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난 내 경험 그 자체보다 그걸 둘러싼 환경을 통해서 미국 의료 서비스의 수준에 대해서 추론하려고 한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의사가 환자에게 할애하는 시간이다. 미국에서 의사를 만나면 최소한 10분은 본다. 의사는 내가 갖고 있는 증상을 한두 번 본 게 아닐 것이다. 대부분 1-2분 안에 원인은 물론 치료방법까지 머릿속에 떠오르겠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것까지 물어보고 내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려고 애를 쓴다. 길게는 15분까지 나에게 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무리 후하게 봐줘도 여기의 반도 못 된다. 이래도 대부분의 환자는 문제를 겪지 않을 테지만, 글쎄… 아무런 차이가 없을 수 있을까?

난 한국 병원에서 아주 낭패를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최고라는 의사가 내게 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아무래도 사는 곳이 미국이라 그 수술을 받으러, 한국에 가는 대신, 미국의 병원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진료기록까지 꼼꼼하게 살핀 미국 대학병원의 의사는 수술이 필요 없단다. 회사에다 병가를 낼 계획까지 세우고 찾아간 건데 말이다. 그는 수술 처방을 내린 의사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결론은 그 한국 의사가 눈에 보이는 증상에만 너무 매달린 나머지 다소 정답과 거리가 있는 처방을 내렸던 것이다. 그렇게 난 수술 일정 대신 약물 처방을 받아 나왔다.

실력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너무 시간에 쫓겨서일까? 난 알 수 없다. 허나 진료과정에서 두드러진 차이는 있었다. 그 한국의 권위자께서는 겨우 1분 정도 내 얼굴을 보고 얘기하다가 수련의에게 넘겼다. 그런데 그 미국인 대학병원 의사는 15분이 넘는 시간을 나에게 썼다. 그리고 이렇게 결과가 다르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한국에서 의사의 처방에 처음부터 따랐더라면 지금쯤 어찌 되어 있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 게다가 그 시간, 비용, 황당한 일이 이것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 일을 두고 아내와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이거 소송 감 아냐?”

그래 소송.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것도 미국과 한국이 꽤 다르다. 여기 미국은 소송의 천국이다. 얼마나 이게 심각하냐면 의사들은 이 소송에 대비해서 보험을 든다. 보험료도 꽤 비싸다. 이게 좋다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의사들 입장에서는 환장할 일이 많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소송에 걸리고, 본인은 끝까지 가고 싶지만 병원 측에서는 합의를 종용한다. 그러나 이게 어느 정도 의사에 대한 견제로써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꼭 견제구가 들어와야 진료를 제대로 하는 건 아니겠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더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시스템이 정착된 게 아닐까 싶다.

무료 정기 검진 역시 큰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병원이란 어디 아플 때나 가는 곳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정기 검진을 받으러 한두 번은 꼭 가게 된다. 주치의 놔두고 다른 병원 갈 이유도 없고, 의사 입장에서도 환자들이 뜨내기 손님이 아니라 단골들이다. 특히 치과에서 장점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내 상태를 길게 보고 관리를 해준다. 아플 때 병원 가서 황당한 소리를 듣는 일이 없다. 무료 건강 검진이라고 대충 하지 않는다. 치과에서는 이때 스케일링을 같이 해주는데 무슨 방망이 깎는 노인인 줄 알았다. 한국에서 친한 친구한테서 받아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그 친구의 두 배나 시간을 써서 구석구석 다 긁어주더라. 이러니 좀 번거로워도 검진을 빼먹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이력 관리가 완벽하니 서비스의 질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한국 병원도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쉽게도 한국에 적용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부담 없이 건강 검진을 받는 이유는 보험사에서 이 비용을 대주기 때문이고, 이 보험은 회사에서 들어준 거다. 매월 내는 보험료도 꽤 비싸다. 한국의 건강보험이 이 비싼 검사와 서비스를 무료로 해주지 않는 한, 난 한국에서 살아도 주치의를 정기적으로 안 만날 거다. 만약 병원에서 손해를 좀 감수하고, 스케일링만 받으러 온 사람에게 엑스레이도 찍고, 온갖 앵글에서 사진도 다 찍어서 관리를 해준다면 갈 것 같다. 그런데 이 생각이 현실적이지는 않겠지. 미국에서는 돈을 받고 해주는 걸 거의 공짜로 해줘야 하는 건데. 의사가 내게 시간을 많이 쓰는 것도, 내가 무료로 건강 검진을 받는 것도 다 비싼 의료비, 보험료를 내니까 가능한 일이다. 나도 병원에서 날아오는 청구서를 보면 부담스럽다. 그런데 그동안 미국과 한국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막연히 불평할 수는 없다. 누군가 해준 이야기가 이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짚어낸 것 같다.

“미국 의료는 세계 최고지. 돈만 있으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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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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