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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유학생활의 외로움

사람들은 뭔가가 잘 될 땐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크게 잘못된 것이 없으니 굳이 뒤를 돌아보며 복기해볼 필요도 없거니와 잘 되는 일을 하는 데에 온 에너지를 집중하다보니 여유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유학생활은 외로움과의 싸움이다. 말도 잘 안통하고 처음에 가졌던 기대와 어긋나는 자신을 보면 슬럼프에 빠지기도 쉽고, 그렇지 않더라도 물리적으로 친구들과 떨어져 있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 유학일기를 시작한 것도 사실은 외로움 때문이다. 마땅히 내가 맘을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도 없는 상황에 여기에라도 이렇게 글을 써야 했으니까. 그러고보면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내 홈페이지를 운영하거나 하면서 글을 남겨왔다. 그런데 뭐 이런 저런 이유로 다 없어져버렸지만...

친구. 친구가 없다는 것이 정말 힘들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그냥 재밌는 일 있을 때 같이 놀고 즐길 사람을 만나기는 쉽다. 문제는 정말 힘들고 고민이 될 때 같이 터놓고 서로 의지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찾는게 이곳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은 서로의 약점을 내보이는 것인데 이 환경에서는 이게 참 어렵다. 한국 사람들과도 미묘한 경쟁의식이 있기 마련이고, 외국 친구를 사귀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친구가 되려면, 먼저 서로에게 흥미가 있어야 된다. Interest가 아니면 Incentive라도 있어야 되는데 한국 사람에게 이 부분이 참 애매하다. 미국 애가 동양의 어디 있는 지도 잘 모르는 애 한테 뭔 흥미가 있겠으며, 적응하느라 바쁜 마당에 뭔 Incentive를 줄 수 있겠냐는 것이지. 중국 애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 한국 커뮤니티는 무시해도 좋을만큼 작기 때문에 그냥 지네들끼리만 지내도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 괜히 같은 조에 껴 있으면 영어로 이야기해야 되고 해서 불편하기만 하고, 그 안에서 특별히 상대방보다 나은 능력으로 뭔가를 만들어내지 않는 한 한국 사람은 짐일 뿐이다.

그리고 애써 조금 친해졌다고 해도 시간이 가면서 멀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생각해보면 중국애들 미국 애들 한국 사람 하나 이렇게 섞인다고 하면, 시간이 가면서 말이 잘 통하는 애들끼리 친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미국애들이나 중국애들끼리 친해지는 속도가 어찌 말도 잘 안통하는 사람과 친해지는 속도와 같겠나.

형식적으로 친해지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어려움을 토로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드는 것은 얼마나 어렵겠나. 나는 운이 좀 좋았던 것 같다. 첫학기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약간 하는 수업이 있었고, 절대 다수의 애들이 헤맬 때 도와주면서 친해질 수 있었기 때문에 파티 등에 초대받는 등 여러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하지만 역시 복잡하고 힘든 고민들을 털어놓기는 쉽지 않는 것이, 일단 말부터 잘 안된다.

어제 아는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얘도 외로움을 못견뎌 하고 있었다. 뭐 나도 마찬가지지. 외로울 때 외롭다고 하고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참 좋은데 말이다. 시카고가 외로운 곳이라 그런 건지... 가끔 나도 그냥 대충 하고 싶단 생각이 막 든다. 애초에 기대했던 것은 이뤄지지 않고, 우려했던 일만 생겨서 가뜩이나 심란한데, 그런 것들을 애써 무시하고 해야 될 일만 한다라... expected return 없이 input만 그대로 집어넣는다는 것은 몸 이전에 감정적으로 엄청난 노동이다. 이런 노동 좀 덜 하고 한국 드라마 다운받아 보고 한국 커뮤니티로 가서 생각을 안하고 살면 분명 외로움도 적게 느끼겠지. 난 이렇게 노력해도 왜 잘 안되나 이런 생각은 분명히 안할테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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