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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허브 코헨도 짜증낼 협상

부동산을 사고 팔 때 리얼터의 역할이 큰데, 특히 여러 협상을 할 때가 그런 것 같다. 내가 부동산을 많이 사고 팔아본 게 아니라 만나 본 리얼터가 많지 않고, 이건 뭐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런데 어떻게 코캐시언, 중국인, 인도인 이렇게 다 겪어볼 수 있었다.

먼저 백인 리얼터들은 다들 합리적이고 신사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서로 무리한 요구는 일절 하지 않더라. 협상을 시작할 때도 합리적인 선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쓸 데 없이 이터레이션 숫자만 늘이는 일이 없었다. 아무리 협상이 둘 사이에 의견만 맞으면 그만이라지만 아무 거나 막 던질 수는 없다. 그런데 내가 하는 요구가 혹은 상대방이 하는 요구가 충분히 받아들여질만한 선 안에 있는 것인지 모를 때가 많았는데, 이럴 때 리얼터의 도움을 받으면서 소통을 많이 했다. 아무튼, 이런 스타일이 나는 편하고 좋다. 이건 인종이 아니라 그 사람의 특징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리얼터끼리 충분히 얘기를 해서 서프라이즈가 안생기도록 조율을 잘 해주더라.

그 다음은 중국계 리얼터이다. 나는 중국인들의 문화가 약간 미국인들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런지 백인 리얼터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다만 협상을 할 때 조금 차이가 있었다. 현재 시장에서 합리적인 선이 있으면 그 선을 약간 테스트해보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쓸데 없이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으려는 점은 백인 리얼터들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인도계 리얼터다. 이번에 집 팔면서 한 번 겪어 봤는데... 와 진짜.. 씨발.. 이거 뭐... 이 사람들은 참 많이 다르다. 그냥 일단 지르고 보는데, 혐상의 이터레이션이 무의미하게 늘어져도 전혀 개의치 않더라. 게다가 거짓말을 예사로 한다. 또한 상대를 도발하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더라.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당황할 구석이 한 두군데가 아니었다. 첫 오퍼부터 완전 미친놈 아니냐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미친 소리에 멀쩡한 말로 대꾸를 하는 게 스트레스였다. 때론 나도 같이 미친 소리로 대응했다. 맨정신에 헛소리 하기도 참... 선을 넘어도 여러개를 넘은 짓을 태연히 하는 걸 보고 진짜 도덕이나 상식 따위는 깔끔하게 무시하는 상대구나 싶더라. 뭐 그 짜증나는 과정을 하나하나 늘어놓을 필요는 없겠고, 그냥 뭐 허브 코헨도 놀라 자빠질만한 협상이었다. 뭐 최소한 우리 변호사는 놀라더라.

그런데 이게 통할 때도 있을 것 같다. 내가 급하게 콘도를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었거나 현재 우리 동네 부동산 시장을 잘 몰랐다면 상대에게 이득을 헌납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게 먹힐만한 상황이 아니면 100% backfire한다. 내가 처음 미국에서 콘도를 살 때 리얼터에게 들은 조언 중 하나가 "절대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지 마라."였다. 괜히 작은 욕심 부리다가 얻어먹을 수 있는 것도 못먹는다고 말이다. 때는 1월 중순이었는데, 난 4월이나 5월 정도에 판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급하지도 않았고, 이 동네에 근 10년을 산 까닭에 이 동네 골목 골목이 어떤지는 리얼터 너보다 내가 더 잘 안다. 그래서 그 쪽이 뭐라 하든 다 무시때렸다. 의아한 점이라면 내 이런 사정을 우리 리얼터가 잘 전달했을텐데, 이 난장을 피운 걸 보면 참 뭐랄까 똑똑한 행동은 분명히 아닌데 말이다. 괜히 날 도발한 덕분에 애초에 셀러에게 해주려고 생각했던 것까지 다 거둬버렸다. 그쪽이 날 도발하는 걸 개의치 않는다면 나도 그들을 기꺼이 도발해주겠다가 이번 협상에서의 내 원칙이었다.

그런데 이게 내가 얼마 안되는 경험으로 너무 일반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주변인들 중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또 있더라. 그 쪽은 짜증나서 아예 너에게 안판다고 쫓아내버렸단다. 난 내가 좋아하는 인도인 친구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인종적 편견이 생길 것 같다. 인도계 미국인이 협상 대상자가 앉아 있다면 이런 일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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