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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세 작가

난 문학 소년이라기보다는 스포츠 팬이었기 때문에, 작가 하면 사직구장에서 각본이 없는 드라마를 심장 쫄깃하게 써내려간 임작가가 생각난다. 허나 오늘은 진짜 소설가에 대한 생각이 났다. 내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셋 있다. 이문열, 위화, 그리고 하루키이다. 이문열의 글에서는 생생함, 그리고 힘이 두드러진다. 위화는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좋다. 슬프기 짝이 없는 비극을 써내려가도 그들을 애정으로 다루는 게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하루키는 특유의 감수성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나하고 너무 비슷해서다.

아마도 내 또래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텐데, 나도 하루키의 글을 '상실의 시대'로 처음 접했다. 정말 술술 읽히는 것이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구나 싶었지만 내가 놀란 부분은 따로 있다. 주인공이 나하고 너무나 비슷했다. 허구헌 날 많은 여자들과 자는 게 비슷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지는 못했고, 그의 성격이나 생각하는 방식이 나와 지나치게 비슷했다. 친구 하나도 그 책을 보는 내내 내 생각이 나더란다. 주인공이 너무 나처럼 느끼고 행동해서 도대체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할 정도였다. 나중에 주인공이 자전적인 캐릭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이해가 됐다. 작가의 상상만으로 이러한 캐릭터를 이 정도의 해상도로 창조해낸다는 건 어려운 일일테니까.

솔직히 난 따뜻한 사람은 못된다. 원래 좀 그렇게 타고났다. 20대 초반에 특히 더 그랬다. 시니컬하다, 때론 염세적이다는 소리까지도 들어봤다. 나도 딱히 부정을 못하겠다. 조금 순화된 버전으로는 자신의 일도 남 일처럼 여기는 재주가 있다 정도다. 이 모든 걸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detachment라고 할 수 있다. 뭐... 애착이 없었다. 여자 친구도 있었고 하고 싶은 일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그러했다는 뜻이다. 이러한 탓에 '같이 흥분해주기를 바라는 사람'과는 상성이 최악이었다. 월드컵 응원 같이 할 사람으로써는 정말 별로라고 하겠다. 나의 이런 점을 하루키의 글에서 느낄 수 있었다. 딱 나 정도의 무심함을 말이다.

이렇게 살면 편하기는 하다. 화가 나는 일도 드물고. 그런데 재미가 없다. 따라서 행복하지도 않다. 내가 존경하던 어느 선배가 내게 '실속이 없다.'고 한 적이 있다. 뭔가는 열심히 하는데, 행복해 보이지 않아서 그랬나 싶다. 그게 20대의 나에게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다. 남들은 월드컵에서 한국 팀이 골만 넣어도 솟구치는 아드레날린과 함께 밤새 술을 마시며 기뻐하는데, 나는 안정환이 골든골을 넣은 순간에도 조용히 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환희의 감정 같은 건 언제 느껴봤는지도 모르겠고. 물론 내게는 다른 문제들이 있었고, 그들 모두 핑계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나의 나 자신에 대한 태도가 그들보다 더 큰 장애물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월이 지나도 나의 전반적인 성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 삶은 많이 달라졌다. 그 동안 많은 일을 겪으며 나도 좀 달라지긴 했지만 다른 큰 사건이 있었지. 바로 애착이라는 걸 갖고 있는 대상이 생긴 것이다. 내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처럼 나를 기쁘게 하면서 동시에 화가 나게 하는 존재가 또 없다. 바로 이 아이들에 대한 애착 때문인 것 같다. 어지간한 일을 봐도 나와 상관 없다고 생각하면 화도 안나고 기쁘지도 않다.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만은 그럴 수가 없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 또 세상에 나를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었나 싶고, 내가 애정을 마음껏 표현해도 되는 사람이 여기 말고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아이들에 대한 애착, 내 삶에 대한 애착 이런 게 생겨서인 것 같은데, 참 세상이 달라 보인다. 대충 세상 만사에 무심하던 내가 좀 달라졌다. 글을 읽어도 그렇다. 나는 소설은 즐겨 읽지 않았는데, 책 속의 일이 어차피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몰입이 잘 되지 않아서다. 이문열 정도의 필력이 되어야 비로소 허구의 사건이 생생하게 느껴졌는데 이 얼마나 높은 허들이냐. 하여간 이건 마치 아이들이 날 다른 세상에 데려다 놓은 것 같다. 육아는 너무나 힘들고, 마누라는 매일 불평하고, 이게 진짜 더 좋은 세상에 데려다 놓은 것인지는 나도 말을 못하겠는데, 아무튼 다르긴 다르다.

하루키의 근작들은 예전과는 좀 많이 다르더라. 특유의 무심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루키에게는 자식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여러 일을 겪으며 사람이 좀 달라진 게 아닐까 싶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뭐 어찌됐건, 유려한 필력은 여전하니 앞으로도 하루키의 글을 즐겨 읽을 것이다. 이왕 달라진 김에, 하루키 그도 조금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글을 계속 쓰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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