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일인데, 지금 첫째 아이가 다니는 공립학교에서 snow pants와 snow boots 등등을 챙겨서 보내라고 하더라. 눈 오면 애들 밖에 나가서 놀아야 된다고. 물론 애들은 눈 밭에서 뒹구는 걸 좋아한다. 헌데 선생님이 어떻게 갈아입힐까 좀 의아하게 생각했다. 데이케어에도 저런 걸 챙겨보내긴 했지만 거긴 선생님 하나 당 아이 숫자가 얼마 안되니까, 급하면 다른 반에서 누가 도와주러 와도 되고, 갈아입혀주나보다 했지. 근데 학교는 선생님이 스무명 가까이 커버해야 하지 않은가? 뭐 좀 의아스럽긴 했는데 어떻게 하든 하나보다 하고 넘어갔다.
근데 얘가 이런 편지를 학교에서 받아오면서 이 의문이 풀렸다. 지금 학교는 킨더부터 5학년까지를 커머하고 6학년부터는 middle school로 간다. 그리고 5학년 애들이 핼퍼로 킨더 학급에 파견된다고 한다. 얘들이 옷을 갈아입혀주고 있었던 거다. 어쩐지 첫째가 이상하게 큰 애들을 많이 알고 있더라. 동네 산책하다가 느닷없이 다섯 살은 많아 보이는 애들한테 인사하고 허그하고 그러는데 어떻게 아냐고 물어봐도 학교에서 알았다 소리만 하더라고. 아무리 recess 시간이 있어도 이렇게 큰 애들이랑 얘가 놀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말이야. 알고보니 다들 핼퍼였던 거지.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말이야. 저학년은 고학년을 피해다녔다. 고학년이랑 엮여서 좋은 꼴 보는 일은 없었다. 도움을 주긴 무슨 도움을 주냐. 나는 지금도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는데, 내가 무슨 일로 어떤 동갑 여자애와 다퉜다.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뭐 그냥 여자애들이 고무줄 뛰기 하는 곳으로 우리 축구공이 날아갔다가 공 줏으러 가서 그랬다 뭐 이런 일이었을 게다. 그냥 멀찍이 떨어져서 한 두마디씩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진짜 별 일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한 두살 많은 선배 꼬마가 나타나서는 내 뺨을 꼬집어서 끌고가더니 때리는 게 아닌가. 그 새끼는 우리가 모르는 놈이었다. 존나 황당한 전개였는데, 나름 여자애 앞에서 폼을 잡고 싶었던 모양이더라. 아무튼 윗 학년이 아랫 학년을 괴롭히기나 했지 도움을 주는 일은 전혀 기억에 없다. 내가 고학년이 되었을 때도 저학년을 무시하고 다녔다. 그냥 축구할 때 걸거치는 존재 정도였지 얘네들을 보살핀다거나 도와줘야 된다거나 그런 생각을 한 기억은 아예 없다.
그런데 여기서는 핼퍼로 고학년들을 만난다. 그것도 맨 위 고학년을 말이야. 이러면 최소한 고학년을 피해다니는 일은 없을 것 아닌가. 고학년들 입장에서도, 이렇게 살가운 편지를 써 줄 정도면, 마냥 귀찮은 존재는 아닐 것 같고. 최소한 보는 게 좀 다르겠지.
한국 학교, 그리고 교육이 인간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내 생각에는 아닌 것 같다. 농담 삼아 만악의 근원이 ‘우리 아들 친구’ 아니었나. 그냥 딥따 문제 잘 푸는 인간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둔 게 한국 교육인 것 같다. 그래서 누구 친구 만난다 그러면 걔 공부 잘 하는지 궁금해하지 뭐 다른 게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여기선 인간 관계 또한 공부만큼 중요한 것 같다.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또 서로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인정하고 어울리는지 말이다. 핼퍼라는 걸 이런 의도로 운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교육적 효과는 있는 것 같다.
우리 애는 편지를 셋이나 받아 왔는데, 좀 특별히 많이 받은 케이스다. 왜 얘가 많이 받았을까 하고 마누라와 궁리를 해봤는데 쉽게 결론이 나오더군. 도움이 많이 필요한 애여서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핼퍼들과 뭘 해도 많이 했겠지. 뭐 이유야 어쨌건 얘가 너무나 좋아한다. 그래서 그 편지들은 내가, 둘째 손 안 닿는 곳에, 소중하게 짱박아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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