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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성진이(조성진) 대단하네

지난 일요일 CSO에서 조성진 동생의 공연을 보고 왔다. 내가 잘난 것 하나 없이 나이만 더 먹었는데, 그래도 나이 갖고 이렇게 시건방진 농담을 뱉을 수 있는 한국 문화 만세다.

CSO는 참 소중한 장소다. 뭔가 마음에 쌓이 먼지를 털어낼 수 있는 그런 곳. 여기 올 때마다 그래도 내가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인생을 잘 못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느낌을 주는 곳이 별로 없더라고. 이번에 보니까 관객의 반 이상이 한국인들이더라. 나하고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공연을 봤는데, 이 사람들 다 한국 사람들이겠지? 시카고 와서 이렇게 한국 사람들 많이 모인 건 처음 봤다. 조성진의 인기가 이 정도인 줄은 미처 몰랐네. 새로운 게 대중화가 되려면 걸출한 인물이 나와야 된다. 한국에서 서태지가 나와서 댄스 음악이 주류로 올라섰고, 커트 코베인 형님이 나와서 얼터너티브 락의 시대가 펼쳐지지 않았는가. 이런 식으로 한국에서도 클래식 피아노의 저변이 넓어지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평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만 뭘 봤으니깐 한 마디라도 남겨야 될 것 같다. 월드 클래스였다. 음반으로 들었을 때는 그냥 담백한 스타일의 연주자인줄 알았다. 그런데 공연에서의 조성진은 완전히 달랐다. 솔직히 너무 놀랐다. 천일무봉의 경지에 오른 테크닉이야 진작 알고 있었지. 그런데 그 힘과 감정의 크기는 진짜 예상 밖이었다. 연주자든 운동 선수든 원래 평소에 안하던 짓 하면 좀 어색하기 마련인데 그렇지도 않았다. 드물게 완성도 높은 연주였다. 연습을 존나 빡세게 한 것 같다. 젊어서 그런지 체력이 좋은 것 같고. 레퍼토리도 현대음악까지 걸쳐있고. 연주자 소개에 ‘one of the consummate talents of his generation’ 이래 박아놨는데, 누구나 납득할 것이다. 내가 가장 즐겼던 부분은 슈만이다. 슈만 특유의 애매함이 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키득거리면서 ‘슈만 니가 그러면 그렇지’ 뭐 이런 생각도 했다.

그러고 보니까 어느 한국인 피아니스트 생각이 나는데, 대충 15년 전 쯤에 유명했었다. 내가 피아노 선생님한테 그 사람 잘 하더라고 하니까 의외의 얘길 들려줬다. 좀 게으름을 피우는 것 같단다. 연습도 많이 안 하는 모양이라고. 나는 워낙 보는 눈이 낮아서 그런지 그 정도만 되어도 감탄에 감탄을 하면서 봤는데 전공한 사람의 눈으로 보면 좀 달랐던 모양이지. 아니다다를까 그 연주자는 이후 급격히 하락세를 탔는지 어쨌는지 지금은 언급하는 사람조차 없다. 반면 조성진은 쇼팽 콩쿨 우승 후에 착실히 성장해가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내 눈으로 봐도 그렇고.

조성진 공연을 또 볼 생각이 있느냐? 그렇다. 키신 형님하고 조성진 동생하고 어느 연주가 더 좋으냐? 이걸 내가 고르고 판단을 하고 자빠진 게 진짜 웃기는 일이긴 한데, 키신에 한 표다. 키신의 셋 리스트나 연주 스타일이 조금 더 내 취향이다. 뭐 둘 다 내 취향에는 너무나 과분한데, 한국에 있을 때부터 꼭 직접 보기를 선망해온 연주자가 키신이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같이 동양인 연주자이자 직접 본 랑랑하고 비교를 해보자면, 난 확실히 조성진이다. 랑랑을 봤을 때는 ‘잘하긴 잘하는데 뭘 저렇게 하나. 하긴 저런 사람도 하나 있어야지.’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취향인 것인데… 하여간 뭔가 새로운 걸 개척해내는데다 연주까지 잘하는 랑랑은 대단하다. 그런데 내 취향엔 조성진이나 키신 형님인 것이고.

아무튼, 성진이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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