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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나이가 든다는게 이런건가

누가 한말이라더라.. 지난 날에 대한 후회가 앞으로의 꿈보다 많아지는 순간부터 우린 늙어간단다.

난 알고 있었다. 머리 돌아가는 게 예전 같지 않고 집중력도 그렇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내가 늙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난 확실히 늙은 것 같다. 아니 늙었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이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았다.

내가 가진 제대로 된 꿈이라면 "필즈 메달"을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난 정작 수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전과하는 게 어떻겠냐는 얘길 들었을 때도 그냥 관심이 없었다. 비록 내가 수학을 전공하지는 않지만, 아직 어리고 시간이 많으니 나중에 공부해도 전공하는 사람들은 쉽게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럴 수 있건 없건 간에 자신감이 참 충만했더랜다.

그리고 꼭 저런 명확한 꿈은 아니지만, 세계적인 석학들이 쏟아내는 책들을 읽으면서 나도 이렇게 책쓰는 사람 레벨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이건 "필즈 메달"보다는 명확하진 않지만, 반드시 되고 싶은 거였다. 그런데 뭔가 잘못 돌아간다고 느낀 건 MIT 미디어랩 교수가 쓴 책을 읽을 때였다. 처음 그사람 책을 읽은 건 1998년이었고 두번째로 읽은 건 2001년이었나 2002년이었나 그랬다. 그 사이 내게 좀 큰 사건이 있었고 아마도 그 때문일거다. 서두에서 "한국의 잘 훈련된 재능있는 인재들"에 대한 언급이 나올 때 내가 저렇게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겁이 났다. 1998년엔 당연한 듯 넘어갔는데 말이다.

뭐 이런저런 자잘한 후회야 수도 없이 하고 살았지만, 뭔가 내 인생이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그 때 처음 했다. 뭔가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일단 뭘 모르니까 뭘 할 수가 없었다. 뭐든 해보라고 하는건 진짜 뭘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거나 팔짜가 너무나 좋은 나머지 인생에 대한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다.

그 당시에는 구라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 대단한 사람들 책을 보면 그 사람들은 항상 속한 조직에서 에이스였다. 그래서 나도 일단은 지금 일을 잘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러면서 영어공부 하는게 고작이었다. 내가 컬럼비아대 교수인 '이매뉴얼 더만'의 책을 읽으면서 참 공감을 했던게 그런 이유였다. 가끔 잘한다 소리도 듣고 밀려나기도 하고 무엇보다 항상 미래에 대해 초조해 하며 다음에는 뭘 할지를 고민하면서 사는게 다른 사람 이야기 같지가 않았으니. 물론 그 사람과 지금 나를 비교하는건, 아쉽게도, 어불성설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2007년이었는데, 뭔가 크게 잘못되어 간다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겉에서 보기엔 멀쩡한 것 이상이었겠지. 그런데 난 내 자신을 소모하고 있었고 한 때 똑똑했던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로 가는 길을 열어젖히기 직전이었다. 사실 이 말은 이매뉴얼 더만의 책에 나오는 건데 그래도 그 사람들은 최소한 최고 대학에서 박사라도 받은 사람들 얘기고 나는 그 리그에 이력서 한번 못내본 사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너무 비참해서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절박하면 뭐든 하게 된다지. 반 쯤은 틀린 말이라고 난 보는데, 역으로 말하면 반 쯤은 맞는 말이다. 그렇게 일이 많은 상황에서도 유학 가기 위한 점수를 만들었다. 너무 바빠서 제대로 시험 시간을 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고 그래서 내가 바랬던 점수는 못만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러 선택지가 나왔다. 하지만 내 인생 마지막으로 저질러보는 미친짓이라면, 의외라도 재밌어보이는 걸 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아마 내가 지원했던 탑스쿨에서도 황당했을거다. 뭔 지원자란 애가 황당한 추천서만 들고 나타났으니. 점수도 그저 그런, 내게 좋은 거라곤 전혀 없는 상황에서 내 경력이 가장 덜 어필할 것 같은 분야로 와버렸다. 실제로 그랬다. 알고는 있었지만, 현실을 맞이하는 건 항상 아프다. 내가 열어젖힐뻔 했던 그 문.. 그런데 그 문에선 멀어진 것인가? 난 거기서 벗어난 게 아니라 그냥 연기되었을 뿐이다. 그 문은 여전히 내 바로 앞에 있고, 다른 길로 가기엔 미국 잡 마켓 사정이 너무 안좋다. 내게 필요한 건 운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운이 따라준다면, 그 문을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회사 다니면서 그 고생을 해서 얻은게 이런 약간의 확률일 뿐이라고 생각하니 참 슬퍼진다.

나이가 든다는게 그런거겠지. 감당할 리스크는 많아지고 얻는 건 갈수록 줄어든다. 높아지는 손익분기점에 무엇이든 할 용기를 잃어가고 자신을 둘러싼 울타리에 갖히게 된다. 그리고 가끔 그 울타리에 도전했다 깨지는 사람을 보고 안도하며 그 울타리 안에서 얌전히 있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철이 들었다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오늘은 하루종일 도서관에 있는대로 정말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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