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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우리 아들이 축구를 한다

정말 놀라운 변화다. 2년 전에 축구 교실에 넣었을 때는 그냥 주머니에 손을 딱 넣고, 축구 공 위에 앉아서는 꼼짝도 안 하던 애다. 퇴근까지 일찍 해서 데리고 갔는데 맨날 저러더라고. 돈이야 이미 썼으니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의 시간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관둘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킨더에 들어간 지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등록을 했다. 같은 학교 친구들이랑 하는 거니까, 뭐 같은 반 애들도 있을테고,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실낱 같은 기대를 갖고 있었지.

지난 토요일 첫 게임에서 내가 목격한 것은 거의 천지 개벽 수준의 변화였다. 코치 말 안 듣는 건 뭐 충분히 예상했던 일인데, 선수 교체를 거부하고 뛰겠다고 억지를 부려서 애를 먹었다. 게다가 두 골이나 집어 넣어서 주변 학부모들의 칭찬을 받았다. 아니 덩치는 제일 작은 애가 어찌나 열심히 뛰는지. 너무나 놀랐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운동 신경이 좋지는 않았다. 야구를 해도 hand-eye coordination도 잘 안되고, 또래들 중에 어린 편이기도 했는데, 그 이상으로 신체 발달이 느렸던 것 같다. 고등학교 가서야 오래 달리기 반에서 일등도 하고 했는데, 그 외엔 뭐… 내가 운동을 잘 한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축구 하는 걸 좋아하긴 했는데, 잘 하지는 못했다. 운동량으로 커버하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였지. 달리는 재주라도 있으니까 이거라도 됐던 것이고, 그래서 나라고 하면 축구 좋아하는 애로 다들 알고 있었지.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운동 실력에 뭐 별 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직 자기 골대가 어딘지도 까먹는 애들이니까 그 사이에서 골 좀 넣었다는게 별 의미가 없는지도 모른다. 아니 별 의미가 없을게다. 하지만 내가 놀란 건 게임을 너무나 뛰고 싶어하고 공을 따러 뛰어가는 아이의 모습이다. 이게 공 차기 싫다고 땡깡을 피우던 그 애가 맞는지 진짜. 아이들이 크면서 자꾸 변한다는데 그 말이 맞다. 지금의 모습으로 아이의 미래를 단정하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벌써 수요일에 있을 연습과 다음 경기가 기대된다. 솔직히 우리 첫째 아이한테도 다 시킨 건데도 이런 설렘과 기대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뭘 잘하면 살 맛이 난다는데 이런 느낌이구나. 우리 부모님이 왜 나에게 항상 화가 나 있었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그게 바람직하다는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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