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 샀더라면 정말 좋았겠지만, 주식에 있어서 지난 날의 가격은 의미가 없다. 테슬라 주식을 사야겠다.
테슬라 차를 직접 사용해보니 여러 가지 느낀 바가 많다. 테슬라는 스마트카, 다른 차들은 그냥 차다.
아이폰이 나왔을 때 생각이 나더라. 아이폰이란 게 스마트폰을 재정의하며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의 시대를 열었다. 아이폰 이전에도 스마트폰이라는 게 있었지. Blackberry 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었지. 미래가 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아는 트레이더 하나는 애플에다 long, RIM에다가 short을 걸었다. 동 시기에 RIM 주식 산 머저리도 하나 알고 있는데 뭐.. 결과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
그 시절에는 정말 많은 회사들이 폰을 만들었고 유의미한 마켓 쉐어를 나눠먹고 있었다. 애플이라는 새 플레이어가 뭔가 새로운 것을 내놨다는 것을 그들도 알았다. 그들도 업력이라는 게 있는데 호락호락 물러날 수는 없지. 다양한 이야기로 그들의 제품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주로 배터리 용량이 어떻고, 램 용량이 어떻고, 카메라 화소가 어떻느니, 무슨 기능이 있니 없니 뭐 이런 것들이었지. 근데 사실 아무 상관도 없는 소리다. 결국에 중요한 것은 사용자들이 얼마나 상쾌하게 그 물건을 사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스펙이란 결국 사용자 경험을 충족하는 수단일 뿐. 애플은 사용자 경험에 필요한 것들을 매끄럽게 조합해다가 내놨던 것이고 다른 플레이어들은 못 했던 것이지.
그 바람에 휴대폰 시장에는 격변이 일어났다. 나도 쿼티 키보드가 달린 삼성 폰을 쓰다가 아이폰을 쓰게 되었다. 출근 버스에서 사람들을 보면 90%가 아이폰을 들고 있었지. RIM은 휴대폰 사업을 접었고 노키아는 사라졌다. 소프트웨어 기업인 구글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삼성도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이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는 자동차 시장에도 비슷한 수준의 변화가 있을 걸로 본다.
테슬라의 특징은 차의 핵심이 소프트웨어라는 거다. 차 전체를 온갖 센서가 휘감고 있고 소프트웨어가 그들을 통합해서 운전을 쉽게 해 준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완벽하게 통합되어 있는데, 아이폰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정점으로 나온 것이 자율 주행이다. 5년 전만 해도 안심하고 쓸 수준은 아니라는 얘길 자주 들었는데 이제는 나보다 운전을 더 잘 한다.
주차할 때는 주변의 지형 지물들을 감지해서 스크린에 차 모양과 함께 띄워준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통합의 다른 예다. 뭐 다른 차들도 후방 감지 센서가 있고 카메라로 뭘 보여주고 뭐 이런 기능들이 있긴 하지. 하지만 테슬라처럼 그 모든 것을 통합해서 스크린에 딱 띄워줄 수 있느냐 하면 뭐 그 근처도 못 와 있잖아. 솔직히 이 기능이 더 완성도가 높아질 여지는 있다고 보는데 덕분에 주차가 너무나 쉬워졌다.
차의 마력이 어떻고 뭐 제동력이 어떻고 하면서 테슬라가 부족하다는 사람도 있을거다. 하지만 대단한 차 마니아, 그러니까 손수 차를 뜯어고치고 업그레이드하는 수준의 마니아를 제외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와닿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지금 들고 다니는 아이폰을 사면서 배터리 용량이나 CPU를 확인해보지 않았다. 세부 스펙을 따지는 게 의미가 있는 경우는 하드웨어의 수준이 충분하지 못하여 사용자 경험을 제한할 때 정도이지 이미 하드웨어가 충분히 발전되어 있을 때는 크게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배터리 용량만 보면 아이폰보다 나은 안드로이드 폰이 있겠지만 어차피 아이폰의 배터리 용량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충분하다. 나는 차에도 마찬가지의 이야기가 적용된다고 본다.
차는 그냥 운송 수단일 뿐이고 스트레스 적게 받으면서 여기서 저기까지 편하게 가게 해주면 그만이라는 사람이 적어도 우리 집에는 둘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현재 테슬라보다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차가 없다.
다른 차 메이커에는 기회가 없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자율 주행 기술을 제외하면 테슬라가 현대차에 대해 가지는 강점이 많지 않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고 잘 쓰는 기능이라도 현재 자율 주행을 사서 쓰는 사람은 내 주변 테슬라 오너들 중에서도 나 밖에 없다. 차선 유지 기능과 Adaptive Cruise Control은 테슬라의 Autopilot보다 나은 면이 있다. 게다가 주차나 차선 변경시 센서의 도움은 효용 면에서 테슬라보다 떨어지지 않는다. 현재까지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율 주행 기능을 쓰지 않는 사람들은 테슬라보다 다른 차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테슬라가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테슬라는 소프트웨어가 중심인 기업이라는 것이다. 이미 새 모델, 새 디자인이 여러번이 나왔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테슬라는 그냥 예전 모델 그대로다. 업그레이드 된 것은 소프트웨어이지. 그리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완벽하게 통합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걸 제대로 해낸 기업은 애플과 테슬라가 전부다. 여기는 독보적인 리더쉽을 구축한 리더가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아주 강력한 리더쉽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기질과 능력 모두에서 말이다.
휴대폰의 시대가 오기 전에는 PC의 시대였다. PC 시대를 지배한 건 Microsoft와 Intel. 하지만 그들에게 밀려간 플레이어들도 있었지. 그 중에는 Cyrix라는 기업이 있었다. “Intel Inside”라는 카피에 대항해서 “Cyrix Instead”라고 마케팅을 했었지. 뭐 한 때는 한가락 했는데 속절없이 밀려나갔다.
때는 2000년 근처였다. 사촌형님이 Cyrix CPU가 들어 있는 컴퓨터를 버리려고 했다. 이미 Windows는 그 CPU를 지원하지 않은지 오래. 램 용량마저도 부족한 걸 내가 얻어와서는 리눅스를 설치하고 여기저기 손 봐서 Emacs와 자바 가상머신을 돌려서 개발 머신으로 아주 요긴하게 잘 썼다.
나는 Windows의 지나친 지배력에 불만이 많았다. 도스 시절 하던 걸 못 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의 자유를 침해받았다고 느꼈다. 하드웨어에 제약을 걸어놓은 것도 싫었고 그 때문에 억지로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해야 되는 데에, 돈이라도 있었으면 안 그랬겠지만, 아주 불만이 컸다. 이런 내게 리눅스는 해방구였다. 물론 쓰기는 좀 불편해도 내가 컨트롤을 쥐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겨우 수세 리눅스나 레드햇 리눅스 구해서 사용하는 주제에 좀 황당하긴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좀 더 많아진 건 사실이었으니까. 보통 사람들은 쓸 수 없는 낡은 PC를 저렇게 썼다는 것은 내 허영심도 채워줬고, 내 지갑에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비슷한 일을 하겠냐고 물어본다면 아니올시다다. 나는 신경써야 할 일이 너무 많다. PC나 휴대폰을 내 취향에 맞게 뭘 어쩐다는 건 사치다. 그런 것들은 그냥 남이 대충 편하게, 내가 신경 안 써도 되게, 만들어주면 그냥 쓰고 싶다. 만약 더이상 지원이 안 된다 그러면 그냥 새로 사고 말지 그걸 어떻게 써보려고 공부해서 어쩌고 하기에는 시간도 에너지도 없다. 20대 초반의 내가 Cyrix 컴퓨터를 지지고 볶은 것은, PC의 소프트웨어, 특히 OS가 지금의 PC나 휴대폰보다 덜 복잡했고, 내게 에너지가 넘쳤으며, 동시에 돈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차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PC에서 그랬듯이 자동차의 소프트웨어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고, 그에 따라서 하드웨어를 직접 컨트롤하며 재미를 느끼는 마니아는 줄어들 것이다. 결과적으로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해가 제조사의 운명을 가를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테슬라가 유리하고, 다른 제조사와 테슬라의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10년 전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헤지펀드에 다니고 있었는데, 내게 테슬라 투자를 권했다. 그 말을 안 들은 걸 이제는 후회하는데, 뭐 그 당시로는 언제 망할지 모르는 회사 치고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지. 그러면서 내게 왜 한국은 현대차와 삼성이 손잡고 전기차를 안 만드느냐고 물어보더라고. 나는 저 회사들에 대해서, 친구 좀 다니는 것 빼고는, 모르기 때문에 뭐라 답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근데 둘이 손을 잡았어도 잘 되지 않았을 것 같다. 저 둘은 기본적으로 하드웨어 회사다. 저기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친구가 소프트웨어 만드는 프로세스도 하드웨어 식으로 되어 있다는 식으로 불만을 토로하더라고. 얘를 들면 소프트웨어는 패치가 쉬운 반면 하드웨어는 리콜 수리가 굉장히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든다. 이런 특성을 반영한 개발 프로세스가 잘 안 되어 있다 뭐 이런 식이었다.
내가 10년 전에 그런 결론을 내렸고, 여유가 좀 있을 때에는, 그러니까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테슬라를 지켜보면서도 주식을 사지 않은 것은 Financial Statements만 봤기 때문이다. 나 같이 어설프게 기업 분석을 배운 사람들이 자주 하는 실수다. 숫자만 보고 기업을 보지 않는다. 위에서 내가 언급한 RIM에 투자한 머저리도 저것만 보고 그러더라고. 물론 숫자만 봤을 땐, 그 당시에는, 진짜 드물게 엉망인 회사였다. 테슬라 쇼룸에도 가봤지만 지금 내가 느낀 것은 쇼룸에서는 알 수가 없다.
디자인 매끈하게 뽑고, 터치스크린을 키운 뒤에 A/C 켰다 끄는 건 대단한 경쟁력이라 할 수 없다. 이 차의 진가는 도로로 끌고 나와서 돌아다니며 일도 보고 주차도 해보고 뭐 그래봐야 알 수 있다. 나는 그런 후에야 이 차의 방향성을, 그러니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Financial Statement 3종 세트하고 쇼룸만 구경한 나로써는 이 회사의 잠재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걸 알아본 내 친구가 대단한 사람인 거지.
스티브 잡스가 죽기 전 월터 아이작슨과의 대화에서 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에 대한 강한 신념을 드러냈다. 월터 아이작슨은 “근데 애플 외에 그런 식으로 제대로 뭘 만드는 데가 어디 있소?” 이렇게 물었고 스티브 잡스는 미국의 자동차 회사 이름을 댔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예전엔 그랬죠.”
그걸 테슬라가 해냈네. 가망 없어 보이던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 말이다. 그러니 테슬라 주식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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