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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깔깔이와 삼선 추리닝

시카고가 워낙에 추운 동네고, 난방을 빵빵하게 틀자면 하염없이 높아질 각종 공과금 때문에 난 좀 춥게 산다. 집이 춥다보니 뭘 더 입을 수 밖에 없는데 이럴 때 유용한게 깔깔이다.

깔깔이가 군대보급품이다보니 밖으로 가져나올 수는 없는 거라 들었다. 게다가 난 군대를 남들처럼 현역으로 구르지 않아서 군대에서 깔깔이를 지급받지도 못했다. 그런데 4주 훈련을 마치고 있던 어느날 친한 동료가 깔깔이 공동구매가 인터넷에 떴다며 사보자는거다. 난 뭐 별 관심이 없긴 했지만, 깔깔이가 가지는 위상- 말년 병장의 삐딱함이랄까- 때문에 호기심으로 참여했다.

그렇게 해서 생긴 깔깔이는 겨울철마다 집에서 입고 뒹구는 데 썼다. 그러다가 미국에 오게 됐는데, 아무래도 필요할 것 같아서 챙겨왔다. 미국에서는 아무도 깔깔이를 모르다보니 심지어는 입고 밖에 나가기까지 했는데, 가끔 한국 사람들이 날 보면 깔깔이라면서 엄청 좋아하더라.

그리고 삼선 추리닝. 아마 백수의 상징이 삼선추리닝이 아닐까 싶다. 원래는 이게 아디다스의 고유 패턴인데 한국의 짝퉁 업자들이 그냥 이 패턴을 가져다 쓰면서 막 입는 추리닝의 대명사가 된 게 아닐까 싶다.

남루함을 나타내는 아이템 중에 이 깔깔이와 삼선추리닝을 능가하는 게 과연 있을까? 물론 한국에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삼선 추리닝과 깔깔이를 같이 입고 있다. 한국에서 내가 이렇게 입고 있는 걸 사람들이 보면 기겁을 하겠지.

어제 시카고 밖에 있는 아울렛 매장에 갔는데, 마침 평소 집에서 입던 나이키 박찬호 추리닝이 찢어져서 추리닝을 하나 살 참이었다. 가보니 아디다스의 삼선추리닝이 있길래 샀지. 소재도 마음에 들고 다 좋더라고. 그리고 이게 약간 몸에 붙는 스타일인 것이 디자인만 봐도 찌질한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난 그냥 디자인, 가격이 다 괜찮아서 이걸 샀을 뿐이다.

그런데 집에 와서 이걸 입고는 깔깔이까지 걸쳐보니 이거 진짜 한국을 대표하는 백수패션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미국에선 그런거 없지만. 오늘 한국사람들 집에 놀러오는데 이러고 한번 있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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