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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카메라가 생긴다

대학 시절에 가졌던 취미 중 하나가 “사진”이었다. 그 때는 디지털 카메라가 제대로 없었다. 몇달치 생활비가 될 돈을 털어서 카메라를 덜컥 샀고 현상과 인화까지 배워서 직접 하느라 아주 많은 돈이 들어갔다. 과외로 겨우 생활비를 버는 처지에 그렇게까지 한 것을 보니 내가 진짜 좋아하긴 한 모양이다. 찍는 것보다 더 공을 들이고 열심히 공부한게 인화였다. 그렇게 찍고 인화한 내 습작들 중에 몇개는 아직도 내 친구들의 책상 유리에 끼워져 있다. 생각해보니 전시회에 참여한 적도 있는데, 같이 전시를 한 사람들이 거진 다 프로들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용기였다.

그런데 대학교 4학년이 마지막이었다. 졸업하고 나니 도무지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내 실수라고 하긴 뭣하지만,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기는 바람에 내 20대가 몽땅 일만 하다 흘러가다니 허무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해서 현상/인화까지 하던 제대로 된 사진 취미는 끝이 났고 디지털 카메라를 하나 장만해서 주변 사람들 사진만 찍고 다녔다. 가난한 내 처지에 비싼 카메라는 엄두도 못냈고 그냥 컴팩트 카메라를 쓰다보니 여러 한계가 많았다. 그래서 그냥 사진만 찍은 것이지 습작을 남기지는 못했다.

올해 아내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카메라를 하나 사자고 했다. 그러면서 제법 야박한 예산을 줬지만 그게 어디냐. 그래서 어떤 카메라를 살 수 있는지 조사를 좀 해봤다. 정말 기술이 많이 발전하긴 한 것 같다. 옛날에는 엄두도 못내던 후덜덜한 성능의 카메라들이 제법 싼 가격에 나와 있더라. 그동안 쓰던 컴팩트 카메라를 40씩 주고 샀었는데 물가 오른 것 생각해보면 지금 카메라는 염가 수준이다. 수많은 옵션들 중에 내가 원하는 조합을 가장 싸게 만드는 방향으로 카메라를 샀다. 이것저것 더 사야할 것들이 있지만 그렇게 해도 $1000이 넘어가지 않는다.

20대 초반에 하던 취미를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다시 하게 되었다. 다시 전시회에 참여할 것 같지는 않지만, 좋은 추억을 많이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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