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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

올바른 트랙에 올라서기

한국에서 직장을 다닐 때 ‘은천성 영어사랑’이라는 동시통역 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겨우 한 달 만에 좌절하고 그만뒀지만, 그 어떤 영어 학원보다 내게 큰 도움을 줬다. 그 강좌에서 들은 얘기 덕분에 내 목표를 올바르게 설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성인이 된 사람이 원어민과 같은 소리를 내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정확한 표현과 문장을 구사하면 원어민들로부터 무시를 당하지는 않는다.“

토종 한국인으로서의 한계는 있으되, 원어민들이 알아들 수 있는 발음과 억양으로, 교양 있는 표현을 써서 정확한 문장을 말하는 게 나 같은 사람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것만 되면 미국에 사는 원어민들로부터도 영어 잘한다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건 누구나 노력만 하면 도달할 수 있는 목표이기도 하다.

먼저 발음과 억양 얘기를 해보자. 나도 굴려서 빠르게 말하는 사람을 보고 영어 잘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원어민 친구들하고 얘길 해보니 그들의 생각은 반대였다. 어차피 토종 한국인 아닌가. 억양도 발음도 정확하지 않으면서 미국인들처럼 굴려서 빨리 말하면, 영어 못하는 애들한테나 멋있어 보이지 여기 사람들은 못 알아듣는다. 어찌 알아들었다 하더라도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하더라. 속도도 문제인데, 실제로 어느 미국인 친구가, 나를 두고 한 소리는 아니고, “영어 잘 못하면 천천히라도 말하면 좀 알아들을 텐데”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미국인과 같은 속도로 굴려서 말하는 건 나 같은 사람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어차피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봐야 원어민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차라리 또박또박 천천히 말하는 게 원어민들이 알아듣기 좋다.

교양 있는 표현을 많이 익히고 사용하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도 지적인 언어를 쓰는 사람을 보면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듯이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발음이야 원어민과 거리가 있겠지만, 교양 있는 표현을 정확하게 구사하면, 여기 원어민들도 ‘이 친구가 외국에서 왔지만 똑똑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구나’하고 여긴다.

“You know”와 “Man”, 더 나아가서는 비속어와 슬랭까지 남발하는 걸 목표로 삼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걸 학교에서 발표할 때 쓰겠나, 직장 면접에 가서 써먹겠나? 이 동네 사람들도,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라도, 술집에서나 쓰지 직장에서 잡담할 때조차 그런 말투는 들어 보기 어렵다. 나도 실수를 한 적이 있는데, 때와 장소를 잘 가려서 사용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무례하게 들리기 쉽다. 이제 언어를 배우는 수준에 있으면서 시의적절하게 말을 가려 하는 건 쉽지 않다. 난 그냥 안 쓰는 걸 추천한다. 입장을 바꿔서 외국인이 어색한 발음으로 한국말 비속어를 쓰는 걸 본다고 하자. 좋게 봐줘야 ‘웃기는 놈’ 정도이지 절대 그 사람이 훌륭해 보이지는 않을 거다. 어디까지나 formal한 영어를 구사하는 게 우선해야 한다. 그것만 되면 저런 구어체 영어는 아무런 노력 안 해도 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교양 있는 영어를, 발음과 억양까지 같이 공부할 수 있을까? 난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문, 오바마 전 대통령의 연설문과 음성 파일을 구해서 외웠다. 연설문은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와 조금 거리가 있기 때문에, 영화와 드라마도 병행했다. 이 때 내 교재가 되어준 것들이 ‘Friends’, ‘Before Sunrise’, ‘American Beauty’ 등이다. 난 액션 영화를 즐기는데, 영화 특성상 대사가 많지 않고, 일상생활과도 거리가 있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회사를 다니고 나서는 직장 동료들과 주고받는 이메일을 많이 참고했다. 나를 이메일 체인에 포함시킨 사람들 중 아무도 내가 그들의 메일을 외웠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겠지. 그런 이메일은 직장에서 쓸 만한 표현도 많고, 내 업무에 관련된 내용도 많기 때문에 훌륭한 교재가 되어주었다.

어느 날 퇴근길 라디오를 귀에 꽂았다. 이어폰에서는 내가 그토록 하고 싶어하는 영어가 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충분히 구사할 수 있으면서 원어민들이 쉽게 알아듣는 발음과 억양으로, 단순하지만 분명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문장을 누군가 사용하고 있었다. 이 훌륭한 영어의 주인공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어떤가? 이 길의 끝에 유엔 사무총장이 되기에도 충분한 영어가 있다면 제대로 된 트랙에 올라서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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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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