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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

따뜻한 말 한마디

유학을 결심했을 때, 내가 부딪힐 현실에 대해서는 친구들로부터 충분히 들었다. 그래서 나도 노력을 많이 했지만 영어가 내 바람처럼 쉽게 늘지는 않더라. 그래도 졸업을 하고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을 즈음에는 주제가 뭔지 알면 대충은 알아듣고, 천천히만 하면 할 말도, 비록 더듬거리더라도, 할 수 있게 됐다. 글로 쓰는 건 별 어려움이 없었고 말이지. 하지만 이게 충분하냐고? 그럴 리가 있나?

우여곡절 끝에 회사를 다니게는 됐는데 영어를 못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온 회의실이 혼란과 침묵에 빠졌을 땐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지. 가능하면 사람들과 어울리고 또 말도 하고 해야 조금씩이라도 나아질 테니 말이다.

어찌어찌하여 회사의 어느 미국인들 모임에 어울리게 됐다. 우리는 매주 수요일마다 맥주를 마시러 다녔다. 거기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은 나 하나, 나머지는 모두 미국에서 나고 자란데다 나처럼 영어 못하는 동양인과는 어울려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나는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하고는, 자기네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난 같이 앉아 있기만 했다. 가끔 대화를 알아듣고 끼려고 해도 워낙 빨리 이야기가 흘러가다 보니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는 사이에 벌써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알아들은 내용도 별로 없었다.

그러던 어느 수요일이었다. 스페인에서 살았던 동료 한 명이 내게 말해줬다. 자기가 처음 스페인에 갔을 때는 말을 하나도 못했단다. 그냥 사람들과 어울려 술집에는 갔지만, understood nothing이었단다. 하지만 계속 공부하고 어울리다 보니 점점 알아듣는 말이 많아졌고 그렇게 스페인어를 할 줄 알게 되었단다. 하나도 못 알아듣는 그 기분이 어떨지 잘 알지만, 너무 자신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계속 노력하라고 말해줬다.

그날 그 이야기가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내가 늦은 나이에 미국 와서 영화 스크립트나 외우고 있는데, 이런 내가 영어를 잘 못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 그 자리에 있던 native speaker들도 그건 다 알고 있다. 그러니 내가 영어 못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냥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노력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배워가는 거다.

나는 계속 그 모임에 나갔고, 알아듣는 내용도 점점 많아졌다. 조금씩 대화에 끼어들 때도 많아지고 말이야. 영어를 어떻게 하면 잘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왕도가 어디 있겠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조금씩이나마 길이 열리는게 어디 영어뿐만은 아닌 것 같다. 아마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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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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