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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

이 산이 아닌가 봐

미국으로 간지 몇 달이 채 안됐을 때 일이다. 영어 공부를 한답시고, 미국 드라마 Lost의 DVD를 빌려다가 자막을 보면서 대사를 외우고 있었다. 그냥 들리는 건 별로 없었지만, 끈기 있게 하나 둘씩 에피소드를 정복해갔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완전히 들리는 대사가 나타났다. 나도 어지간히 놀랐나보다. 10년이 넘은 지금도 그 순간, 그리고 그 대사까지 오롯이 기억난다.

“Now, somebody can tell me. Who or what this son of bitch is!”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 중 좀 멀쩡한 캐릭터가 하는 말은 하나도 안 들리고, 악당이 소리치는 것만 그나마 좀 들리는가 싶더니 이 사단이 났다. DVD를 멈추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어째서일까? 곧 결론이 났다. 내가 너무 액션 영화만 본 탓이다. 그 당시에 내가 고른 영화들이 다 이런 식이었다. 터미네이터, 엑스맨, 원티드.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외국인이 영화 넘버 쓰리의 송강호 대사를 외우고 있는 꼴이니 얼마나 우스운가? 조직 폭력배와 어울리는게 목적이라면 모를까, 학교에서나 회사에서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날부로 난 Lost를 집어넣고, 내 취향이 아니어서 예전에 그만둔 Friends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외운 온갖 끔찍한 대사들은 나중에 친구들 하고 놀 때 개인기로 써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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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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