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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

경쟁

내가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일해보며 느낀 문화 차이는, 아마도 이 한 가지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바로 미국이 한국보다 경쟁이 치열한 곳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이렇게 얘길 하면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해한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 한국은 국토는 좁은데 사람은 많아서 경쟁이 심하고, 미국은 땅도 넓고 인구가 많지 않아서 경쟁이 덜하다고 흔히 들어왔으니 말이다. 저 말이 옳은 구석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크게 보면 틀렸다에 가깝다.

“적응하거나, 사라지거나. (Adapt or die)”

이 동네 살면서 정말 많이 듣는 말이다. 이 냉정한 소리가 여기서는 상식이다. 미국 사람들은 경쟁이 좋은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법률과 제도는 많이 있지만, 기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신산업을 틀어막는 규제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원래 있던 것에 도전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거기서 살아남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게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인 것 같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오는 이슈가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회사들의 분할이다. 내가 보기엔 정치적인 수사에 가까운 소리라 현실성은 없는 것 같지만, 이런 의제가 거론되는 이유가 단순히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서란다. 변화에 밀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태도도 한국에서 보던 것들과 좀 다르다. ‘Brick and Mortar’로 지칭되는 전통적인 리테일 가게들, 그 중에서도 작은 독립 점포들이 고전하는 건 이미 전국적인, 아마도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 싶다. 가게가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아쉬움을 쏟아내는 사람들은 있어도, 온라인이나 대형마트를 규제하자는 목소리는 듣기 힘들다. 재래시장을 구원하기 위해 대형 마트를 규제하는 한국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경쟁이 좋은 것이란 명제가 옳은지에 대한 판단은 일단 유보하자. 이 동네 사람들이 경쟁에 가진 믿음은 거의 신앙에 가깝다. 이런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경쟁이 얼마나 치열하겠나?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기 밥숟가락을 올려 놓으려고 세계에서 난다 긴다 하는 제품과 서비스는 다 밀려온다. 정부 차원에서 이들을 막지도 않는다. 결국, 독일을 대표하는 제품인 자동차, 스위스를 대표하는 서비스인 은행, 심지어 한국과 일본에서 가장 잘하는 야구 선수들도 다 미국으로 오지 않는가? 경쟁에 대해 열려 있는 사고를 갖고 있는 이곳 사람들, 거기다 세계에서 다 밀려오는 우수한 제품과 서비스. 거기다 시장은 크고, 할 일도 많고, 사람도 많다. 이들 조건이 다 맞아 떨어지니 미국이 경쟁이 심한 동네가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물론 한국도 경쟁이 심한 곳이다. 헌데, 이 경쟁의 내용이 미국에서와는 조금 다르다. 결국 이 경쟁이라는 것도 구매한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느냐에 달려 있다. 구입한 제품으로 비용과 시간을 아끼는 것에서 만족을 느낀다면 제품의 질이 최우선 고려사항이 될 것이다. 같이 술자리를 자주 가진 사람의 매출을 올려주는 것이 마냥 행복하다면, 제품의 퀄리티가 어떻든, 그 영업사원이 파는 물건을 사기 마련이다. 미국에서는 전자와 같은 케이스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후자의 경우를 왕왕 봤다. 실제로 한국에서 내가 만든 제품이 어느 고객에게 팔린 이유가 제품의 성능이 아니라 담당 영업이 구매 담당자와 쌓아 놓은 친분이라고 하더라. 아마도 그 영업의 말이 맞을 거다. 그 고객도 조금이라도 비용과 일손을 줄여야 할 절실한 동기를 갖고 있는 게 아닌 이상, 제품의 성능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겠지. 이유야 무엇이든 그 고객은 내 제품을 구매했고, 그게 행복하다는데 내가 할 말은 없었다. 비단 그 영업으로부터 무리한 요구를 자주 받아서는 아니지만, 엔지니어로서 썩 달가운 현실은 아니었다.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아마도 시장의 크기 때문인 것 같다. 미국에서는 큰 시장에서 큰 파이를 놓고 많은 경쟁자가 뛰어 든다.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배운 수요 공급 곡선이 있지 않은가. 두 곡선이 아름답게 만나서 시장가가 정해지기 위한 몇 가지 전제 조건 중에 무한히 많은 시장 참여자가 있다. 미국이라고 수요자/공급자가 무한하지는 않지만 시장이 크다는 건 시장이 효율적으로 동작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이 점에서 내가 위에 언급한 그 고객이 있는 시장은 효율적이기가 어렵다. 가뜩이나 진입장벽이 높은데다 정부의 간섭도 많은 산업인데, 거긴 몇 개의 메이저 플레이어가 있을 뿐이다. 대충 나눠 먹는 시장에다가 이익을 쥐어짜내야 할 압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약간의 비용 차이에 민감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미국보다 더 큰 시장을 갖고 있는 산업이 한국에 있을까? 아마 별로 없을 거다. 미국의 시장이 큰 만큼 더 효율적으로 동작할 것이고, 이는 작은 경쟁력의 차이도 확실하게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리하자면, 미국은 한국에 비해 제품과 서비스의 질에 대한 경쟁이 심한 곳이다. 경쟁력을 갖춘 상품을 시장에 내놓으면 그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다. 따라서 일을 정말 잘 할 수 있는 조직과 사람이 필요하다. 동기는 수요를 만들고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정의한다. 그리고 이게 지속되면 문화가 된다. 일단 문화가 확립되면 사소한 일에도 스며드는데다 잘 바뀌지도 않는다. 내가 보고 겪은 한국과 미국의 직장 문화에는 무시못할 차이가 있다. 한국보다 여기가 경쟁이 치열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아주 많은 것들이 이해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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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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