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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

이너 써클을 뚫어라

어느 날 퇴근 후 CBOT (Chicago Board of Trade) 근처의 한 술집이었다. 나는 회사의 다른 팀 동료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긴 해도, 이메일 등을 통해, 이름은 들어왔던 터라 반갑게 인사했다. 그렇게 밝은 분위기에서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제 업무를 말씀드릴 것 같으면 재수 없는 상사들에 대한 경멸을 감추는 것과 화장실에서 자위행위를 하며 조금 덜 지옥 같은 삶을 꿈꾸는 것입니다.”

뭐… 내가 비록 외노자이긴 해도 초면에 이런 말을 뱉기에는 잃을 게 많은 사람이다. 그럼 어찌하여 그 우호적인 대화가 이리로 이어졌을까? 여기까지 온 과정을 되새겨봤다.

그래 난 출근을 하게 됐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지. 근데 워낙 일과 개인 생활의 구분이 분명한 동네라, 동료들과 밖에서 어울리게 되지는 않더라. 중국인들이나 인도인들은 자기네들끼리 점심도 자주 먹고 신입 직원이 오면 따로 챙기기도 하던데, 일단 걔네들은 숫자가 어느 정도 많아서 가능한 일이고, 한국인들은 그렇지 않다. 같은 층에서 일하는 동료들 중에, 한국말 할 줄 아는 사람은 나 포함 두명이다. 분명히 지금도 일 끝나고 노는 모임이 여럿 있을 것이다. 헌데, 회사 내 한국인 커뮤니티가 없기도 하고 영어도 자유롭지 못하면 그런 데에 접근하기란 어려운 게 사실이다. 나라고 뾰족한 수는 없었는데, 운 좋게 퇴근하고 노는 모임에 어울릴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 옆자리 동료, K 때문이다.

K는 테네시 주에서 자랐다. 학부는 테네시 주, 석사학위는 위스콘신 주에서 받았다. 유학생들이, 심지어는 내 친구까지, 많이 다니는 학교를 다녔지만, 나처럼 영어 안되는 외국인들과는 어울려 본 적이 없어 보였다. 반면 나는 원어민들과 어울려본 일이 없었지. 그런 우리가 나란히 앉게 됐다. 일도 같이 했다. 거의 뭐 일방적으로 내가 도움만 받았지만. 게다가 영화 보는 취향도 비슷해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좋아해서, 쉽게 친해진 것 같다. 그가 나를 같이 노는 사람들 모임에 데리고 갔다.

나 말고는 전원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었다. 솔직히 나는 걔네들 얘기하는데 끼어들지도 못했다. 영어가 너무 부족했으니까. 그래도 계속 끈질기게 나가다보니 가끔 알아먹는 말도 있고, 재밌는 일도 하나씩 생겼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한 모양이다. 자주 얼굴 보고 웃고 하다 보니 친해졌고, 나도 겉돌지 않을 수 있었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Steve Jobs의 사망 소식도 얘네들과 맥주를 마시다 들었다. 하여간 이렇게 어울리다 보니 내 캐릭터도 생겼다. 치킨 윙을 젓가락으로 먹는 사나이다든가, 영화에서 영어를 배우는 엔지니어 뭐 이런 것들이다. 동아시아인들에게는 별 것 아니지만, 우리가 하는 수준의 젓가락질은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기예로 받아들여지더라. 또 내가 영화로 영어 공부를 한다는 사실도, 뭐 나 같은 외국인이 그러고 있으리라는 건 얘네들도 짐작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직접 보는 게 재밌었던 모양이고, 지네들도 재밌게 본 영화가 내 입에서 나오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K와 놀다가 알게 된 친구 하나가 자기네 팀 Happy Hour에 날 초대했다. 이름이야 들어봤지만 처음 보는 거나 다름없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날 벌써 ‘영화 대사를 외우는 사나이’로 알고 있더라. 내 명성은 들었다며, 인상적인 영화 대사 좀 해달라더라. 그래서 내가 고른 게 ‘American Beauty’에서 주인공이 회사를 때려치우던 장면이었다. 사실 내가 제일 열심히 외운 대사는 ‘Pulp Fiction’에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본인이 나오는 장면인데, 미국에서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되는 인종차별적 어휘가 많이 등장하는 탓에 이런 데서는 써먹을 수가 없었다. 아니 한번 하긴 했는데 K가 화들짝 놀라서는 말리더라고. 그땐 뭐 영문도 몰랐다. 하여간 내 업무와 상사에 대한 감상은 절대 술김에 뱉은 진담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

이런 식으로 가지를 쳐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다. 사무실에서 오다가다 인사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내 달력에 빈자리가 없어질수록 점점 더 이곳에 내 자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정감이 느껴졌다고 해야겠다. 좀 덜 심심하고 기분 좋은 것 외에 내 업무에도 아주 많은 도움이 됐다. 예를 들면, 다른 팀과 협업을 하게 됐는데, 그 쪽 담당자가 엊그제 같이 맥주 마신 사람이었다. 영어도 잘 못하고 새로운 환경에 가뜩 쫄아 있는 마당이긴 해도, 아는 사람하고 일을 하게 되니까 질문이래도 좀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점이 다 결과에 나타나더라.

난 지금도 K가 고맙다. 그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 직장에 이렇게 빠르게 녹아들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적으로 친한 걸 떠나서도 그는 훌륭한 사람이고 뛰어난 엔지니어이다. 아쉽게도 그는 나와 1년 정도 일한 후에 캘리포니아로 떠났다. 같이 일하고, 웃고 떠들던 그 시간들이 그립다. 최고의 동료가 누구였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K가 나의 탑픽이다.

생각난 김에 K에게 연락을 해봤다. 코로나 아포칼립스 와중에도 잘 지내고 있단다. 이 난리가 끝나면 시카고에 놀러 오겠다고 하네. 치킨 윙을 기가 막히게 하는 집을 하나 봐 놨는데, 그날이 오면 여기 데리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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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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