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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등록금 투쟁이라...

물가는 매년 한자릿수인데, 등록금은 두자릿수로 계속 뛰다가 이지경까지 왔다.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선 이게 참 이슈인데, 명박이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하네.

내가 대학교를 다니던 90년대 말은 학생운동으로써는 아주 과도기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민주화'라는 의제는 더이상 통하지 않았다. 뭔가 새로운 걸 발견해내야 하는데 지금까지 전투적으로 데모만 하던 애들이 딴걸 할 수 있을 리는 없고.. 그래서 본격적으로 일반 학생들과 운동권이 거리가 멀어져가기 시작했던 시기다.

특히 비운동권 학생회가 들어선 이후 운동권 애들의 설자리가 좁아졌다. 그러다가 어느 총학 선거에서 운동권 단체 애들이 새로운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비운동권 애들은 투쟁 같은걸 안해봐서 아무래도 등록금 투쟁 같은데서 약할 수 밖에 없었단다. 그래서 투쟁은 자기네들 전문이니까 자기들을 밀어주면 화끈하게 등록금 투쟁을 하겠다고 했다. 이게 통했는지 걔네들은 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 걔네들은 다른 운동권들 사이에서도 가장 전투적이고 공격적인 집단이었는데 이런 걸 내걸어서 당선되었던 거다.

그런데 왠걸.. 내가 기억한 그 해는 가장 등록금이 많이 올랐던 해였다. 그리고 걔네들이 뒤에서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띄게 등록금 관련해서 뭘 했던 건 기억나지 않는다. 오히려 매일 중도를 향해 큰 스키퍼를 틀어놓고 학내문제와 전혀 상관없는 걸로 매일 떠들었다. 대부분은 '김대중 정권 퇴진운동' 같이 전혀 감이 안오는 이슈였다. 왜 그러고 있냐고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이게 몇십년을 이어온 논리인줄 아느냐며 질문하는 사람이 비겁하다고 윽박지르기나 했다.

공대는 거의 매주 시험이다. 중간, 기말 때만 바짝 하면 되는 다른 단과와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걔네들 스피커 공세에 난 엄청 짜증이 났고 나 말고도 다른 많은 학생들이 짜증을 냈다.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걔네들은 애초에 학내 등록금 문제 등에 관심이 없었다. 그냥 그걸 선거 때 이용해먹었을 뿐이다. 꼭 누구 말마따나 선거 때 뭔 말을 못하겠나.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일 이후로 난 학생회에 대한 관심을 꺼버렸다. 관심을 둘만한 가치가 없었다.

그 뒤로 들리는 소식은, 운동권 학생회가 완전히 몰락했다는 것이다. 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 걔네들이 비정상적인 억지 아젠다를 들고 나와 옛 방식을 고수하지 않았따면 어떻게 됐을까? 허구헌날 김대중 정부가 비민주적이라고 우길 게 아니라 일찍부터 학내문제에 관심을 돌렸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지 않았을까. 일찍부터 등록금문제를 비롯한 학생들의 진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면, 이렇게 운동권이 박살나는 일도, 이렇게 어이없이 오른 등록금에 고통받는 일도 덜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어느 조직에 가나 이런 사람들을 본다. 위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그 조직에서 성공한 사람들인데 문제는 옛날에 성공했었던 사람이란거다. 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성공한 방식을 포기하지 못한다. 시대가 변해도 주변에 자기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말을 먼저 듣고 현재의 변화를 무시한다. 결국 그조직은 망할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성공을 위한 자기 파괴가 말처럼 쉬운 것이라면 야후도 모토로라도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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